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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도원의 비망록-1 <코레일 경북남부지사 다물군 스토리>

어느 철도원의 비망록

by 강병규 2017. 1. 1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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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철도공사 인재개발원 발행한 <코레일 리더십 사례집 제2호 ‘우리는 리더가 될 것인가, 관리자가 될 것인가’ 2011.6.30.>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지사 단위 조직에서의 경영혁신 활동 사례입니다.>


궁즉통(窮卽通)-다물군 스토리

                                                                                     인재개발원 서비스아카데미센터장 강병규(2011.6.30.)


한 말과 들은 말
대화에서의 '말'이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상대방이 들은 말’이다. 내가 어떤 의미로 말했느냐 보다는  상대방이 어떤 의미로 이해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글을 통해 경북남부지사라는 조직을 이끌었던 이천세 지사장과 당시 팀장들이 보여 준 리더십을 말하고 싶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경북남부지사 다물군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표현이 서툰 글이지만 읽는 이들이 나의 생각을 제대로  듣게 되길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리더다
내가 생각하는 리더란 생각하고 행동하고 성과를 내는 사람이다. 남다른 특별한 생각을 하고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을 하고, 그래서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 관한 아주 특별한 경험담이다. 
    
흔히들 조직의 성패는 소속장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한다. 철도 현장에서도 단위 소속장이 리더십을 발휘하여 성과를 낸 사례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조직의 규모가 지사나 지역본부 정도가 되면 소속장 혼자만의 리더십으로는 한계가 있다. 물론 일시적인 성과는 낼 수 있겠지만 관건은 성과의 지속성이니까. 

조직원들의 의식과 행동은 소속장보다는 직상급자인 중간간부들의 역할에 따라 더 크게 좌우된다. 소속장이 아무리 탁월한 비전을 제시하더라도 간부들이 이에 대해 심정적으로 공감을 하지 않는다면, 비록 말로 표현은 하지 않더라도 직원들은 단번에 그 눈치를 채기 마련이다. 이는 그대로 조직 분위기가 되고 소속장의 리더십은 침묵의 늪에 빠져버린다. 따라서 중간 관리자들의 리더십 역량이 매우 강조되는 것이다. 

어느 설문조사에서 직장인들에게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이유를 물었을 때 71.3%가 직속 상사 때문이라고 하였다 한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이야기는 소속장 뿐만 아니라 중간관리자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이 리더의 취향에 따라 마치 중심도 없는 배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사고방식을 바꾸면 희망이 보인다!
궁(窮) 즉 통(通). 정말 지독하게도 궁했기 때문에 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006년 7월 6일 김천역 1번 승강장 옆 빈터에서 코레일 경북남부지사 출범식이 열렸다. 65명밖에 안 되는 지사 스태프가 한자리에 모일 강당이나 회의실조차 없어서였다. 하긴 지사장실이나 사무실도 미처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김천역 2층의 예전 김천보선사무소 자리에 들어 선 경영관리팀과 영업팀 사무실은 개조 공사도 덜 끝나 창문마다 비닐로 막아 놓은 상태에서 PC만 켜 놓고 시급한 업무를 겨우 처리하는 형편이었다. 연일 계속 되는 장맛비 속에 다른 사무집기들은 출범식 전 날까지도 역 공터에 쌓아 둘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원들은 지사가 얼마나 갈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과 회의에 빠져 일손을 놓기 일쑤였다. 불과 한 달도 안 돼 이런 저런 핑계로 타지사로 빠져 나가는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이천세 지사장은 취임사에서 ‘우리 지사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사원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사고방식을 바꾸면 희망이 보인다’고 역설하였다. 조직이 나아가야할 방향, 즉 비전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움츠러든 직원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심어 준 것이었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과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하게 된다.


미션 임파서블 프로젝트 탄생

하지만 당장 무엇을 할 것인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날 신문에서 모 기업체 사장이 직원들에게 각각 특별한 미션을 부여하고, 미션 수행 결과에 따라 포상을 한다는 토막 기사를 보았다. 그걸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했다. ‘바로 이거다!’ 지사장과의 영업팀 저녁 모임에서 내가 제안을 했다. “우리도 이런 거 한번 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천세 지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2006년 7월 경북남부지사 희망 만들기 대작전, ‘미션 임파서블 프로젝트(Mission Impossible Project)’가 시작되었다.


신사업 아이템을 찾아라!

미션 임파서블 프로젝트는 3개의 미션으로 기획하였다. 첫 번째 미션은, ‘경북남부지사가 살아 갈 신사업 아이템을 찾아라!’였다. 지사 관할지역에서 수익원이라고는 구미역과 김천역 말고는 변변한 영업장도 없는 상태였다. 지사가 책임경영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 내야한다는 게 이천세 지사장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사업 아이템이란 게 생각한다고 금방 떠오르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나온 것이 ‘사무실을 떠나라!’는 것과 '자율복장 근무'라는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상자를 벗어나 생각을 하자.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지사 스태프나 현장직원 그 누구든지 개인 또는 팀을 짜서 지사장에게 직접 출장 신고만 하고 떠나면 되었다. 어디를 가는 지 묻지 않았다. 기간도 제한이 없었다.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서내 결재 라인도 아예 없앴다.

성과는 놀라웠다. 약 한 달 동안 102명의 직원들이 동참하여 60건의 프로젝트 과제를 쏟아냈다. 역 구내에 유휴부지를 만들어 임대하는 방안, 폐콘크리트침목
재활용사업 등 기발한 아이템도 나왔다. 특히 당시 왜관시설주재 현장직원이던 공사 1기생 새내기 도재석 사원과 김민호 사원은 불과 일 주일 만에 50여 페이지에 달하는 김천역 구내 골프연습장 사업안을 제출하여 지사장과 스태프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천세 지사장은 현장 순시 중 상주역 구내에 장기 유치 중인 새마을호 식당차를 보고 나서 와인트레인(Wine Train)이라는 대박 아이디어를 직접 구상해 내기도 하였다.


내 안의 다이아몬드를 캐내라!

지사 스태프들에게 변화 적응력과 혁신 마인드를 심어 주기 위한 첫 번째 미션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다음은 현업을 포함한 지사 전직원의 동참을 유도할 차례였다. 그래서 제시한 두 번째 미션은 ‘내 안의 다이아몬드를 캐내라!’였다.
직장인들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의 다이아몬드 같은 결정체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조직생활에서 응어리져 온 불만도 있을 것이고, 본인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보석 같은 아이디어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꺼내서 불만은 풀어주고 아이디어는 빛이 나도록 다듬어야 한다.

방법은 7개 테마의 미션 리포트 양식을 만들어 주고, 각자 내용을 작성하여 제출하는 방식으로 했다. 2006년 8월 11일부터 시작하여 약 한 달 만에 역과 사업소 등에서 총 409명의 현장직원들이 참여하여 196건의 과제를 발굴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면 길이 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이제 할 일은 사업 아이디어와 개선과제 가운데서 옥석을 가리고, 우선순위를 정하여 실행해 나가는 것이었다. 세 번째 미션은 ‘우리가 가면 길이 된다!’였다.

2006년 9월 1일부터 추진과제별 전담 T/F팀을 구성했다. 지사장이 주도하는 신상품개발T/F팀에 차량팀장과 전기팀 직원이 팀원으로 참여하고 경영관리팀장이 주도하는 신사업개발 T/F팀에 영업팀, 시설팀 직원이 팀원이 되는 등, 부서와 직책을 초월한 팀이 짜여졌다.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마련되는 대로 프로젝트 발표회를 계속 열었다. 지사장도 T/F팀의 팀장이 되고, 와인트레인 프로젝트를 직접 발표하였다.  

날이 가면서 구체적인 성과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동근 경영관리팀장의 T/F팀에서는 김천역 구내의 사용하지 않는 선로 일부를 이설하고 유휴부지를 확장하여 인근 농협에 임대하였다. 이 과정에서 철도 역사상 최초로 협상가로 임대료를 산출하여, 종전 방식으로는 연간 1천2백여만 원에 불과한 임대료를 8천 2백여만 원으로 올려 받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김명철 영업팀장의 T/F팀에서는 구미역사 임대매장 확충으로 연간 1억 4천만원의 고정 수익원을 확보하였다. 안용득 시설팀장의 T/F팀은 전차선 작업으로 베어 내야할 추풍령역 구내 배롱나무를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올려 900만원에 판매하는 부대수익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런 크고 작은 성공 체험들을 통해 지사 스태프는 물론, 지사를 바라보는 현업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우리도 하면 되는구나. 작지만 강한 지사를 만들어 보자’라는 공감대가 젖은 종이에 물감 번지듯 지사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열정은 몰입을 불러 일으켰다.


지사장과 팀장들 잇몸 내려앉다

이 글을 쓰노라니 그 때 일들이 마치 꿈만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들은 꿈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과 직면하고 있었다. 거의 매일같이 지사장실에 모여 과제별 진도를 체크하고, 안 되는 일들은 되게 하는 방안을 찾아내야만 했다. 아침부터 머리가 멍멍할 때도 많았다. 불면의 밤 또한 적지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지사장실에 들어서던 순간 깜짝 놀랐다. 이천세 지사장의 입주변이 온통 퉁퉁 부어있는 것이 아닌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잇몸 전체가 내려앉은 것이었다. 지사장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지사장과 팀장들은 경북남부지사가 2006년도 경영평가 전국 1등을 해서 받은 성과금의 대부분을 잇몸 치료에 썼다는 이야기는 우스개가 아니라 가슴 아픈 사실이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진다. 과연 무엇이 우리들을 그토록 몰입하게 하고, 지사 전체를 네 팀 내 팀 없이 한 마음으로 묶어냈는가? 위기의식? 솔직히 그건 아니었다. 그런 표피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한 식구라는 형제애 같은 그런 일체감이었다.


가정을 포기한 사람들

지사를 하나로 똘똘 뭉쳐 낸 그 바탕에는 솔선수범의 리더십이 있었다. 지사장이 직접 자신이 기획한 프로젝트 T/F팀장으로 뛰는 모습을 보면서, 팀장들은 가정을 포기했고 팀원들은 휴일을 반납했다. 네 팀 내 팀이 따로 없고 네 일 내 일 구분도 없이 함께 뛰다 보니 경북남부지사는 어느새 하나의 이름으로 뭉쳐져 있었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이런 게 아닐까? 조직원들에게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직접 선두에서 함께 길을 헤쳐 나가는 리더. 그 여정에서 조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가슴으로 소통을 하는 지사장과 팀장들의 진솔한 모습. 그를 통해 조직에 열정과 몰입을 불러일으키는, 바로 그거였다. 이천세 지사장과 팀장들은 단 하루도 혼자서 저녁을 먹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직원들과도 그야말로 한 식구가 될 수 있었다. 물론 밥값 계산은 지사장의 몫이었고.^^ 


작지만 강한 지사가 되다

어느덧 불과 6개월 만에 거둔 성과라고는 믿기 어려운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와인트레인의 대박 행진, 역구내 골프연습장과 폐침목재활용사업안 본사 추진사업으로 채택, 코레일 경영 혁신 경진대회 최우수상 수상, 조직문화 허브 선정, 대미를 장식한 것은 경북남부지사가 전국 17개 지사 중 2006년도 경영평가 1등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었다.

역 구내 공터에서 출범한 가장 작은 규모의 경북남부지사가 어느 새 전국 최강 지사로 성장한 것이다. 경영평가 1등을 자축하는 저녁식사 모임에서 이천세 지사장과 팀장들은 식당 바닥에 무릎을 꿇고 지사 직원들을 향해 큰 절을 하였다. 그 날 저녁 우리 모두는 눈물 콧물이 범벅된 기쁨의 건배를 끊임없이 외쳐댈 수 있었다. 작지만 강한 지사, 우리는 그것을 해냈다!


다물군 부활하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조직에 어떤 비전을 심어주고 그 비전이 직원들의 가슴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 무엇을 했었는지, 그걸 통한 성공 체험에 관한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한 방향으로 정렬된 조직원의 역량을 어떻게 결집시켜 나갔는지를 이야기할 차례이다. 바로 경북남부지사 다물군 이야기이다.

우선 다물군이 무슨 말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다물군(多勿軍)이란 명칭은 당시 MBC TV에서 방영되었던 역사 드라마 주몽에서 따온 것이다. ‘고객과 수입을 다 물어 오는 군대’란 뜻으로 처음에는 경북남부지사 영업판촉단 명칭으로 지은 것인데, 점차 ‘경북남부지사 사람들’이란 뜻으로 확대되었다. 작명을 잘 한 덕분에 나는 다물군 책사라는 명예로운 직함을 얻게 되었고.^^
 
“강 선배, 이것 좀 봐 주세요.”
2007년 2월 어느 날 영업팀 박삼희 차장이 영업판촉단 활동 계획서 초안을 내밀었다. 언뜻 보니 명칭이 ‘삼족오(三足烏)’라고 되어 있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TV 드라마「주몽」에서 따온 것이었다. 순간 번뜩 떠오른 것이 다물군이었다.
“이왕이면 다물군이 어때? 고객과 수입을 다 물어 오는 군대...”

자랑 좀 하자면 이런 방면에서 나는 두뇌 회전이 남다른 편이다. 이를테면 본사에 근무할 때엔 코레일 비전인 ‘파워 코레일 비전 코레일(Power Korail, Vision Korail)’, 철도여행문화운동 ‘바르게 깨끗하게 함께 편하게’ 등을 기획했었다. ‘미션 임파서블 프로젝트’, 와인트레인 홍보 카피 ‘보랏빛 기차여행 와인 향기 속으로!’, 인재개발원 비전 ‘여기서 준비하여 대륙으로 펼치리라’ 등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다물군 구성은「주몽」에 나오는 ‘다물군’의 편제를 본 따 만들었다. 영업팀장을 대장(隊長)으로, 5개 그룹역장(김천․구미․영동․왜관․상주)은 각 군의 군장(軍長)으로, 지사 6개 팀장은 명예군장(名譽軍長)으로, 영업팀원 7명은 책사(策士)로, 각 그룹역과 관할 소속역의 마케팅 전담직원은 군사(軍師)로, 전체 역 직원은 다물군(多勿軍)으로, 각 사업소 직원은 명예다물군(名譽多勿軍)으로 편성 하여, 경북남부지사 전 직원 804명이 모두 다물군으로 활동을 하는 전사적인 활동 체제를 갖추었다. 군대에는 군기(軍旗)가 있어야 하는 법. 삼족오가 힘차게 날개를 펼치는 모습의 다물군 군기도 내가 직접 디자인하였다.

드디어 2007년 3월 6일 김천역 광장에서 다물군 발대식이 열렸다. BC37년경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다물군이 2,044년 만에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공기업인 코레일에서 마케팅을 위해 조직을 다물군 편제로 바꿨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는지 네티즌들은 재미있는 다물군 패러디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다. 나는 다물군 책사 자격으로 KBS 라디오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쇼를 하라

경북남부지사가 또 쇼(show)를 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쇼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왜? 일단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는데 쇼보다 더 나은 방법을 아직은 찾지 못했으니까.^^

다물군 쇼의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미션 임파서블 프로젝트를 할 때 팀원들의 대화는 거의 이런 식이었다.
“무슨 소리야? 이건 임파서블 미션이라고. 그러니까 말이 안 돼도 해 내야지!”
다물군으로 임명되자 현장 사업소 직원들의 말투까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거 아냐? 우리도 다물군인데. 수익증대 해야지.”   

그런데 가만히 보니 다물군이 사기도 충천했고 그럴싸한 군기(軍旗)도 있었지만 정작 군복(軍服)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다물군 조끼였다. 디자인은 새내기 강진우 사원이 했다. 내친김에 소서노군(召西奴軍) 조끼도 만들었다. 소서노군은 지사 여직원과 김천시내 단골고객 아줌마들로 구성하였다. 소서노군 창단식까지 열어 임명장도 수여했다. 지역사회에 다물군의 지원부대가 생긴 것이다.

지사 전직원이 다물군 조끼를 처음 입던 날, 영업팀 중심이던 다물군 편제를 전지사 조직으로 개편했다. 수익증대 다물군, 고객만족 다물군, 품질안전 다물군, 청렴혁신 다물군. 이천세 지사장은 다물군 대장이 되었다. 다물군 군기가 새겨진   붉은 와인색 조끼는 경북남부지사의 공식 유니폼이 되었다.


어, 다물군 왔어?

복장은 의식을 지배한다.  다물군들이 그랬다. 다물군 조끼를 입게 되자 다물군은 말 그대로 ‘무엇이든 다 물어 오는 군대’가 되었다. 수익을 위해서라면 분야도 직책도 초월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윤봉근 승무팀장은 승무를 거부하는 기관사 대신 변압기 특대화물열차를 운전하여 3천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동근 경영관리팀장과 김규민 사원은 여객전무 대신 관광열차 승무원이 되었다. 

직원들은 출근하자마자 상의를 벗고 다물군 조끼를 입었다. 회의를 할 때마다 지사장 이하 전원이 다물군 조끼 차림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현장 방문을 하거나 심지어 외부기관과 협의를 할 때도 우리의 공식 복장은 다물군 조끼였다. 코레일 안팎에서 경북남부지사를 ‘다물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 다물군 왔어?


선로 없어도 열차는 간다!

경북남부지사 다물군의 활약상 중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많다. 명품관광열차 레일크루즈 해랑에도 다물군과 관련된 드라마틱한 탄생 설화가 있다. 이 열차는 당초 베이징 올림픽 때 남북공동응원열차로 운행할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이 공사를 맡은 업체가 바로 김천역 인근 경북선에 있는 로윈이라는 철도차량 제작사였다.

베이징 올림픽을 불과 6개월 앞둔 2008년 1월말, 무궁화호 객차 20량을 로윈공장에 투입하라는 지시가 본사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로윈공장은 그 때까지도 경북선과 연결되는 전용선이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용선 설치에 소요되는 기간만도 3개월, 시간도 없는데 객차 인입선마저 없다! 하지만 이건 국가 차원의 중대 과제였다.
다물군들이 머리를 맞댔지만 매우 난감했다. 누군가가 불쑥 내뱉듯이 말했다.


“본선을 잘라 붙인다면 또 모를까...”
궁즉통(窮卽通)이었다.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황당한 일에 누가 총대를 멜 것이냐? 다물군에게는 남다른 특징이 있다. 따질 때는 서로 핏대를 세우더라도 책임만큼은 절대 남에게 미루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기발한 수송작전계획이 나왔다. 당시의 전형규 지사장은 총괄 지휘관, 전체 작업 책임은 경영관리팀장이, 객차수송작업은 영업팀장이, 현장 차량 차입은 차량팀장이, 선로작업은 시설팀장이, 야간 건널목 안전관리는 전기팀장이, 세부작업계획은 영업팀 신태구 차장이 주관하기로 했다. 과연 다물군답지 않은가?


드디어 D데이인 2008년 1월 31일 밤, 다물군은 철도 역사상 전무후무한 작전을 감행하였다. 1단계로 디젤기관차 2대와 무궁화호 객차 20량에 보선장비 2대로 편성된 무려 500미터가 넘는 길이의 열차를 조성한다. 건널목 4개와 교량 6개를 지나는 총 9.1km 거리를 칠흑 같은 한밤중에 추진운전 방식으로 운행한다.

2단계는 경북선 본선을 잘라 로윈전용선으로 연결하고, 객차를 1~2량씩으로 나누어 일일이 공장에 차입을 한다. 3단계는 공장에서 개조를 마친 전동차 5량을 본선으로 인출한다. 마지막으로 선로를 다시 본선으로 연결하고, 열차를 조성하여 김천역까지 수송한다. 이 전체과정이 1월 31일 21:30부터 2월 1일 05:05 사이에 김천역과 옥산역간 경북선 본선 철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다물군은 UCC로 통했다

조직문화의 근간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을 해야 공감하고, 공감을 해야 동참도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다물군에게는 특별한 소통방식이 있었다. 바로 다물군 통신이라는 UCC였다. 영업팀 원대희 차장이 동영상으로 칭찬릴레이를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칭찬릴레이는 물론 정년퇴임, 송별회 등도 UCC로 제작하여 지사 회의 때마다 발표를 했다. 지사내 현안사항이나 특별한 이벤트, 예컨대 점촌테마역 조성작업이나 명품객차수송작전 등 지사 스텝과 현업직원이 참여한 모든 활동을 영상물로 제작하여 업무포탈을 통해 공유하였다. 다물군은 그걸 통해 보람과 자부심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끈끈한 유대감은 덤이었다. 


다물군이 다물군인 이유

오늘의 코레일이 조직원 모두가 하나의 이름으로 뭉치고 열정을 다해 몰입하는 그런 조직을 필요로 하는가? 부서간 직렬간 벽이 없고 네 일 내 일을 구분하지 않고 모여 머리를 맞대는 그런 직원들이 필요한가? 그리하여 남들은 미처 생각조차 못하는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그런 조직원을 갖춘 조직이 필요한가? 바로 경북남부지사가 그런 조직이었고 다물군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감히 자부하고 싶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조직을 활짝 꽃피우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조직을 침체에 빠뜨리는 리더도 있다. 그런 점에서 경북남부지사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3년 2개월 동안 개성도 스타일도 다른 3명의 지사장이 리더의 역할을 했었다. 그런데 지사가 리더십 때문에 슬럼프에 빠졌던 기억은 통 나지 않는다. 물론 이천세 지사장이나 전형규 지사장, 이기송 지사장이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이미 다물군 정신으로 무장된 직원들은 더 이상 리더십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발적인 동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해 나갔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물군의 혼
어느덧 경북남부지사는 지사장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든지 그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조직 구성원 스스로가 동력을 충전해 나가는 그런 조직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초창기에 직원들 가슴마다에 깊이 심어 진 비전이 조직 전체에 완전히 뿌리를 내려 전사적인 열정과 몰입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의 당시 팀장들의 역할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들은 지사장의 리더십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여 나름의 전략과 전술로 이를 구체화시킬 줄 알았다. 무엇보다도 개인보다는 팀을, 팀보다는 지사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고, 끝내는 성과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조직에서 중간간부가 필요한 이유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내겐 이들이 바로 다물군의 혼(魂) 그 자체이다.
     
다물군이 거둔 성공은 바로 이것이었다.
첫째, 소속장과 중간관리자, 직원이 한 몸이 되어 코레일에 지사 단위 경영체제의 성공 모델을 제시한 것.
둘째,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면 길이 된다’라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코레일 인재들을 길러냈다는 것.
셋째, 그 다물군들이 오늘날 코레일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것.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존경하는 경북남부지사 다물군 전우들에게 바치는 경례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충(忠)! 


궁즉통-다물군 스토리(최종).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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