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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 월류봉에서 구석기시대 고인돌 찾았다!!!

시골역장 일기

by 강병규 2013. 7. 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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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아침이 한가한 날, 내 선택은 둘 중의 하나이다.

1. 날도 흐리고 저녁에 비가 온다니 황간역에 가서 풀 뽑고 꽃모종을 옮겨 심는다.

2. 자전거를 타고 월류봉 코스를 한바퀴 돌아 온다.

오늘 아침의 선택은 당연 2번이었다. 오늘은 기어코 월류봉 원촌리에 있다는 고인돌을 발견(?) 하고야 말리라.

어제 황간면 홈페이지에 있는 원촌리 마을 소개에서 단서도 찾았다.

"또한 구터 마을 북서쪽 용산방면으로 약 500m  떨어진 밭 가운데 비교적 큰 고인돌이 있는데, 덮개돌의 크기는 260*210*30cm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다."

 

원촌교를 건너 용암 쪽으로 가면서 대강 짐작으로 구터 마을일거라 생각되는 동네로 들어섰다. 포도 밭 길을 따라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고인돌 같은 것은

눈에 띄질 않는다. 다시 큰 길로 나와 산 밑 밭을 매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여쭈어 보았다.

"어르신, 혹시 이 동네 고인돌이 있다던데... 어디인지요?"

"아, 고인돌은 저 아래 포도 비닐 하우스 끝나고 감나무 밭 사이에 줄을 쳐 놓은 곳이요."

방금 지나 온 곳인데 안 보였던 것이다. 다시 뒤돌아 가면서 보니...

"찾았다!!!"

 

 그런데... 입구 안내표지가 너무 소박(?)하니 지나가면서도 눈에 안 띄었지.(자세히 살피지 않은 건 순 내 불찰이지만^^!)

 첫 눈에 아담 사이즈...

두 개의 굄돌이 덮개돌을 받히고 있는 전형적인 탁자식 [북방식] 고인돌... 

아득히 먼 그 옛날 저기 누웠던 구석기 시대의 원시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보름달 떠오른 월류봉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가족들은, 그리고 함께 살았을 마을 사람들은?

2만년이란 시간은 언뜻 가늠하기만도 벅찬 세월이다.

석실 앞의 잡초를 좀 뽑고 고인돌을 쓰다듬으면서 문득 그 시대의 사람들과 지금의 내가 전혀 동떨어진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맡았던 풀 향기며 바람내음도, 이른 아침 하늘 빛도 바로 이랬을 터이다.

 

 

석실을 보니 물이 잔뜩 고여있다.  안타깝다. 그리고 공연히 미안하단 생각이 든다.

무심함....

 

아마 동네 분들이 고인돌 주변의 잡풀은 대충 제거한 모양인데 

바닥에 보도블럭을 깐 것도 아쉽고

이게 어느 시대의 어떤 고인돌인지 설명해 주는 안내표지 하나 없는 것도 아쉽고

이왕이면 주변을 좀 넓게 정리해서 그 당시 원시인들이 살던 움집이라도 하나 만들어 놓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컸다. 

암튼 오늘은 이렇게 직접 확인한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지역의 중요한 문화유적인데.... 앞으로 잘 관리 보존하고 관광객들에게도 알리는 방안이 마련되었으면...

고인돌 위 도로 옆에 있는 저 방죽(작은 저수지)을 보니 고인돌 석실에 물이 찬 이유를 알겠다.

 

월류봉에서 용암 쪽으로 가는 솔티고개 입구에 있는 저 버스 타는 곳에서 좌회전 해서 

 

이 포도밭 지나 바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고인돌이 있다.

 

 

 

구터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오던 길을 돌아보면 저기 월류봉...

 

 

아침 안개에 젖어 있는 월류봉. 마치 잠이 덜 깬 것 같아 오늘은 여기서 개망초를 배경으로 한 컷 찍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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