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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역에 꽃을 심는 까닭은....

시골역장 일기

by 강병규 2013. 6. 1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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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한달에 한번 의무적으로 쉬는 지정휴무일이었고, 마침 비 소식이 있어서 역에 나와 화단에 꽃 모종을 심었다.

아침 먹기전에는 역광장 화단에 코스모스 100여 포기 심었다.

아침 먹고 커피 마시자마자 이순덕 요안나 자매가 기증한 꽃판 4개를 싣고 나왔다. 역구내 화단에서 오전 10시경부터 오후 15시까지 장장 4시간(점심시간 1시간 빼고) 잡초 뽑고 꽃모종을 심었다. 허리부러지는 줄 알았다. 쭈그리고 잡초 뽑는 이 단순한 노동이 그렇게 힘든 일인란 걸 어제 첨 알았다. 그래서 농사 짓는 분들은 참 위대한 분들이다.

잡초를 뽑으면서 보니 메리골드와 코스모스 싹이 엄청 올라오고 있었다. 메리골드 씨앗을 뿌리면서 보니 땅이 워낙 메말라 짚까지 덮어 주었는데도 한동안 싹이 보이지 않길래 포기하고 코스모스 씨앗을 덧뿌렸었다. 어제 보니 메리골드와 코스모스 가 그 억센 잡초들 사이를 둟고 무수한 싹을 티워내고 있었다.

경이롭고 고맙고..그러다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뿌린대로 다 올라오다니... 내가 무심코 내 뱉은 말들도 한마디도 그냥 사라지지 않고, 이 세상 어딘가 누군가의 가슴에서 저렇게 싹들을 틔웠을텐데....

순간순간 삶이 고맙고 반가운 나이가 되다보니 이젠 말 한마디 한마디도 해야 할 말을 정성껏 해야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 대신 조근 나온 영동역 이창식 씨가 와서 묻는다.

"역장님, 휴무일 집에서 쉬시지 왜 나오셨어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이렇게 허리 아프게 잡초 뽑고 꽃을 심는 이 일을 왜하고 있지? 

결론은 이게 내 농사란 것이었다. 시골에 살면서도 논과 밭이 없으니 남들처럼 비번날에 지을 농사거리가 없다. 또 내 신분이 황간역장이니 이 역은 내가 가꾸어야 할 공간이고, 그러니 이런 일은 바로 내 농사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면 고객들이 좋아하니까 한다. 나는 영업장인 역을 가꾸는 것인데, 황간역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역을 잘 가꾸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일하는 재미도 보람도 있다. 고마운 일이다.  

사실 역 화단 만드는 것은 오래전부터 생각한 일이었다.  

 통근하면서 황간역 승강장에서 저 공터를 보면서 저기다 화단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올 봄에 예전 내가 황간역 부역장 시절에 황간 선로반에 근무했던 최재훈 씨한테 부탁을 해서 공터 다지기를 했다.

 그리고 대전건축사무소에서 준 야생화 모종 400여 포기를 심었다.

이렇게 하트모양도 만들고

 어제 잡초 뽑고 꽃을 심었다.

 

 아직 멀었다. 아기자기하고 멋진 야생화 화단으로 만들려면 할 일이 참 많다.

오늘은 집에서 솎아 온 채송화를 심고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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