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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역에서 찾은 황간의 이야기- 온통 늪지대였던 황간현, 경부선 열차와 들샘의 사연

황간역 이야기

by 강병규 2018. 1. 26.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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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6.(금) 17:30 황간역 2층 황간마실 카페에서 아주 뜻깊은 만남이 있었습니다.

우송대 철도경영학과 이용상 교수와 황간의 원로 서예가 백산 고광부 선생, 비디오작가 이창주 선생, 그리고 필자입니다.

이용상 교수는 한국철도 120년사를 집필 중인데, 

황간역과 황간지역의 변화에 관한 지역 원로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백산 고광부 선생이 그린 황간면의 옛적 모습입니다.

 

황간역에서 바라보이는 초강천 주변의 현재의 황간면 소재지는 온통 늪지대였답니다.

그래서 지금의 향교 부근 높은 언덕에 토성을 쌓고 황간현감이 거주했을 뿐,

명색은 현이라도 실제 사람이 살만한 터는 별로 없고 주변에 소나무와 참나무 숲만 워낙 울창해서,

주민들은 주로 매곡, 상촌, 임산, 궁촌 지역에 살았답니다.

금강을 타고 올라 온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서 현을 상촌지역으로 옮긴 적도 있었답니다.

그래서 상촌에 관기라는 지명이 있는 것이랍니다.

예로부터 황간 지역 출신 큰 인물이 안 보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우송대 이용상 교수가 제공한 1947년 7월 동아일보 기사 자료입니다.

당시에 황간면이 약 1.5m 이상 침수되어 시가지 전체가 홍수에 휩쓸렸다는 내용입니다.

마치 2002년도 태풍 루사 때의 엄청난 수해를 연상케 하는 것이고,

예전에는 황간면 일대가 늪지대였다는 얘기를 방증하는 기사이기도 합니다.

 

지금보다 강수량이 많았는데 국가 차원의 치수 관리도 없던 시대이고,

현재의 초강천 둑도 없었으니 큰 냇가 주변은 온통 습지대였을 것이 뻔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황간은 예전에는 수운이 가능했던 지역이었답니다.

 

 

 

예전에는 추풍령 쪽에서 올라와서 한양에 가는 길은, 구교동 가학루 뒷쪽에 있던 성황당을 지나 신흥역과 황간현을 거쳐 원촌리,

용산 쪽 보은 방면으로 이어졌답니다.

그 길이 조선시대 역로도에 보이는 율봉도입니다.

나중에 황간현이 사군봉 아래로 자리잡으면서 지금의 황간고등학교 부근에 신흥역(新興驛)이 생겼답니다.

그런데 역원에 쓰일 말을 기른 장소는 현재의 마산리(馬山里)랍니다.    

 

이 그림은 우송대 이용상 교수가 제공한 황간역 관련 자료 중 일부입니다. 

 

 

 

 

주변 지역에서 흑연과 석탄, 목재, 금 생산량도 풍부했습니다.

사람이 거주할만한 지형적 여건이 아닌데도  황간현이 설치되고 나중에 황간역이 생긴 것도,

교통과 물자 수송의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고광부 선생과 이창주 선생이 증언한, 경부선 예전 철길 약도입니다.

현재의 황간 터널 이전에 안화리 고개를 거쳐 묵은점 삽령 터널 못미쳐까지 협괘 철길이 있었고,

지금도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답니다. 

 

 

황간역 건너편 동네에 '들샘'이라는 샘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최고의 수질과 맛으로 이름이 난 샘물이었답니다.

재밌는 것은, 황간역이 경부선 중간지점인지라 같은 시각에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와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황간역에서 만나는 시간 차이가

30분 정도여서, 서울에서 온 이들이 열차에서 내려 그 들샘을 길어다 상행열차에 싣고 가서 서울에서 팔았답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황간의 들샘 물이 중국에까지 수송되었답니다.

 

그리고, 사군봉의 바위 절벽 가운데 호랑이가 살던 굴이 지금도 남아 있고,

예전 추풍령에서 광평 앞산으로 넘어오던 고갯길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답니다.

 

황간에 트럭 20여대를 굴리던 자동차회사가 있었는데, 마루버시라고 했답니다.

 

1927년 조선철도연선요람에 나오는 황간역 기록입니다.

주요 인물을 보면 다른 관공서의 장은 다들 일본인인데, 면장은 김응섭이라는 조선인이었습니다.

황간역에 관한 자료는 물론, 여관 숙박료까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입니다.

 

 

이용상 교수가 필자에게 제공한 황간역에 관한 귀한 사료들입니다.

교통 측면에서의 황간의 변화, 역원으로 이웃 상주 지역과의 관계, 지역에서의 강의 역할과 도로의 역할,

철도로 인한 물자와 사람의 이동의 변화 등을 연구하기에 황간이 아주 적합한 지역이라 합니다.   

특히, 철도역이 지역에서 사람과 문화, 산업, 서비스가 교류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필자의 견해에 주목하여,

그런 관점에서 황간역과 지역의 변천을 연구하고 있답니다.  

 

 

 

고광부 선생과 이창주 선생은 황간면지 편찬 작업 중이어서, 이 분들 세대가 간직하고 있는 황간의 이야기들이 기대됩니다.

또 한국철도 120년사에 황간역과 황간면의 이야기가 수록된다는 것도 참 반갑고 감사한 일입니다.

 

조만간 황간마실카페에서 '황간의 어르신께 듣는 우리 동네 이야기' 자리를 마련하고,

그리고 철도교류회 때는 이용상 교수의 '철도문화사 이야기' 강연도 진행할 생각입니다.

이 분들이야말로 살아있는 박물관이자 도서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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