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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정완영 시인의 외갓집 고향에서 만난 김구용 시인, 녹차 황오 시인-시의 고향마을 오도티

나의 이야기

by 강병규 2018. 5. 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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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26. 백수문학관 마당에서 열린 제4회 (사)백수문화기념사업회 음악회에 간 길에 들른 백수문학관 전시실에서

김구용 시인이 백수 시인에게 보낸 서간문을 발견하였다.

 

 

1974년에 김구용 시인이 쓴 것으로, 당호 휘호에 백수 시인의 시를 적은 것이다.

'황악시실'은 당시 황악산 아래 백수 시인의 '삼오야서'로 짐작이 된다.

 

 

반가운 마음에 김구용 시인의 제자인 장종권 리토피아 주간에게 사진을 보내더니 바로 답신이 왔다.

생전에 백수 정완영 시인과 김구용 시인이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백수 시인이 세 살 연상이었다고 한다.

 

이를 문희탁 관장에게도 전했더니,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 것은 우연이 필연이 된 일이라며 매우 반가워했다. 

 

생전에 백수 시인은 녹차 황오 선생의 시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제자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조선조 최대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녹차 황오 선생

한국현대시조를 완성한 백수 정완영 시인

한국 초현실주의 시의 지평을 연 김구용 시인

이 걸출한 시인들의 시의 고향이 바로 상주 모동의 오도티-백수 시인의 외갓집 고향 마을이다.

아래 사진은 2018.5.18. 저녁 백화산 우분투체험관에서 만난

백화산을 사랑하는 모임 황학연 회장,

백수 정완영 시인의 제자 최정란 시인,

백수 정완영 시인의 아들인 (사)백수문화기념사업회 정준화 이사장,

문희탁 우분투체험관 문희탁 관장 일행이다.

오도티마을과 인연이 있는 조선시대의 녹차 황오 시인과 백수 정완영 시인, 김구용 시인을

기념할 수 있는 문화사업을 모색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가운데 안경 쓴 이가 김구용 시인의 제자인 장종권 리토피아 주간(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필자가 이 일에 관여를 하게 된 것은,

백수 시인의 외갓집 고향마을인 오도티에 백수 시인을 기리는 시비 하나 세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이다. 

백수 시인이 평생 외갓집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노래한 주옥같은 동시조들이 지닌 그 순수한 아름다움의 근원인

오도티 마을에 시비를 세워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몇해 전 문희탁 관장에게 그런 애기를 했고, 당시의 백화산을 사랑하는 모임 회장 등 마을 사람들도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었다.

그후 작년엔가 김천의 백수문학관과 황간~오도티를 연결하는 '시인의 외갓집 가는 길' 인문학 순례코스와

오도티마을에 외갓집문학관을 세우는 계획을 구상했었고,

문희탁 관장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조선시대의 대시인인 녹차 황오 선생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오도티 마을 아이들도 특출하게 시를 잘 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상주 모동 출신 김구용 시인에 관해서도 듣게 되었고,

이러저러 연결되다보니 백수 시인의 외갓집 고향마을이 일테면 시의 본향이자 시원(始原)이 된 것이고

가칭 '시인의 마을' 같은 시문학테마 사업을 의논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직은 문희탁 관장과 황학연 회장을 중심으로 백화산을 사랑하는 모임 차원에서의 구상단계이지만,

워낙 콘텐츠 자체가 좋고 당위성 또한 충분한 것이라 기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 등에서 발췌한 자료로 시인들에 관해 간략히 소개를 한다.

 

김구용(金丘庸) 시인(1922~2001)

 

                        

1922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김구용 시인은 부모 곁에 있으면 제 명을 잇지 못한다는 말에 따라

 4세부터 금강산의 한 사찰인 마하연에서 불교와 한학을 공부했다.

 1942-62년에는 동학사에 수시로 기거하며 경전과 동서 고전을 탐독하고 번역도 했다.

일제시대 징병과 징용을 피해 은둔과 독서로 시간을 보낸 그는 해방후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부산 상명여자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서라벌예대 강사, 건국대 강사, 성균관대 교수 등을 지냈다.

1949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시 <산중야(山中夜)>신천지에 발표하며 등단한 뒤

시집 <> <구곡(九曲)> <송백팔(頌百八)> <뇌염> <풍미> 등을 냈다.

그의 시는 애절한 한국적 정한을 바탕으로 선()적 직관과 불교적 상상력,

 초현실주의 등에서 보이는 자유로운 상상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동서양의 차별과 주객의 구분조차 없앤

근원적 자유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뿐만 아니라 한문 번역에도 일가를 이뤘다.

<채근담> <노자>를 비롯, <수호전> <옥루몽> <삼국지> <열국지> 등 중국 고전을 번역해 내는 업적을 남겼다.

그는 시인들로부터 시집의 제자(題字)를 많이 부탁받을 정도로 서예에도 일가를 이뤘다.

<김구용문학전집>으로 2001년 제36회 월탄문학상을 받았다.

2001년 12월 28일 향년 79세로 별세했다.

 
녹차(綠此) 황오(黃五) 시인(1816~  ?)

 

 

유랑시인 녹차(綠此) 황오(黃五)선생은 모동 수봉 출신이다

녹차 황오선생은 1800년대 김삿갓으로 불리는 김립. 추사 김정희 등 당대의 저명한 문인들과 교류하며

압록강 이남에서 날 따를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압록강의 (綠)녹자와  이를 차(此) 녹차라는 자호를 쓸만큼

대단한 문학적 자부심을 가졌던 시인이다.

선생은 평생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천지를 주유한 불우한 유랑시인으로

20세에 한양에 올라가 십여 년을 지내고 강산을 두루 유람하다 40후반에 중모로 내려 왔다고 전해진다.

김삿갓 김병연과도 순위를 겨루기 힘들 정도의 문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향갔을때 서로를 위로하는 편지를 주고받기도 하였고

추사 김정희가 죽었을 땐 만가를 지어서 중모에서 과천까지 올라갔다고 전한다.

당대의 지식인이자 민중적 시인으로 만여 권의 책을 독파 하고도 유랑의 길을 택했던 시인은

상주 모동 꽂밭모리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묵은 묘지에 잠들었다가 최근에 후손들이 이를 발견했다고 한다.

모동의 뜻있는 이들과 상주의 문인, 후손들이 황녹차 시비를 세워 놓았다.

 

백수(白水) 정완영(鄭椀永) 시인(1919~2016)의 외갓집 고향마을

2014년 4월 18일 백수 시인을 모시고 찾았던 모동 오도티 마을

 

 

 

 

 

 

 

백수 정완영 시인의 어머니 연안전씨 준생(延安田氏 俊生)은 경북 상주군 모동 출생이다.

 

생전의 백수 시인은 詩作의 모태가 된 고향, 외갓집, 외할머니, 어머니를 늘 그리워하며 제자들과 함께 모동면 수봉리 오도티 마을을 자주 찾았다.

김천에서 기차를 타고 추풍령을 넘어 황간역에 내려 어머니 손잡고 재를 넘어 오도티마을 외갓집에 갔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며, ‘외갓집 가는 길’, ‘외갓집이 없었다면’, ‘엄마 목소리등 주옥같은 동시조를 많이 남겼다.

백수 시인의 외갓집 고향 길목인 황간역에서는 2014년도부터 매년 백수 시인의 외갓집 가는 길을 주제로 시화전과 음악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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