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9.(토) 오후 3시부터 열린 제70회 황간역 음악회는,
남명옥 민화전 with 도영실과 자목련시낭송협회의 시낭송 콘서트에 빨간머리 앤 코스프레로 다채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오늘은 자목련시낭송협회에서 주관한 시낭송 콘서트- '봄이 오는 기쁜 날, 시 愛 꽃자리로 피다'를 소개합니다.
식전 공연 <봄날 춘향>에 이어 이현옥 시인의 사회로 시낭송콘서트가 시작되었습니다.
필자는 황간역 명예역장으로 소개되어 환영인사를 했습니다.
가수 지중해 씨가 <안동역에서>와 <고마운 당신>으로 막을 열었습니다.
<안동역에서>의 가사를 "황간역에서"로 바꿔 부르는 만점 센스^^*
<고마운 당신>은 지중해 가수가 아내인 이현옥시인에게 바치는 노래더군요.
정창영 작가의 사진으로 시낭송콘서트를 소개합니다.
[황간역 꽃자리 1]
박태임 시낭송- 그리운 이 그리워 /오세영
그리운 이 그리워
오세영
그리운 이 그리워
마음 둘 곳 없는 봄날엔
홀로 어디론가 떠나 버리자.
사람들은
행선지가 확실한 티켓을 들고
부지런히 역구를 빠져 나가고
또 들어오고,
이별과 만남의 격정으로
눈물짓는데
방금 도착한 저 열차는
먼 남쪽 푸른 바닷가에서 온
완행.
실어 온 동백꽃잎들을
축제처럼 역두에 뿌리고 떠난다.
나도 과거로 가는 차표를 끊고
저 열차를 타면
어제의 어제를 달려서
잃어버린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운 이 그리워
문득 타 보는 완행열차
그 차창에 어리는 봄날.
박진희, 홍인숙 시합송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도종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도종환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였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 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 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서영자 시낭송 - 어머님의 아리랑/황금찬
어머님의 아리랑
황금찬
함경북도 마천령, 용솟골
집이 있었다
집이라 해도
십 분의 4는 집을 닮고
그 남은 6은 토굴이었다
어머님은
봄 산에 올라
참꽃을 한 자루 따다 놓고
아침과 점심을 대신하여
왕기에 꽃을 담아 주었다
입술이 푸르도록 꽃을 먹어도
허기는 그대로 있었다
이런 날에
어머님이
눈물로 부르던
조용한 아리랑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엔
가난도 많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산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울고
무산자 누구냐 탄식 말라
부귀와 영화는 돌고 돈다네
박꽃이 젖고 있다
구겨지며
어머님의 유산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김남연 시낭송 - 새벽열차가 밟고 지나간 자리 /손종호
새벽 열차가 밟고 지나간 자리
손종호
미움은 사랑이 아니다
그러나, 잠못들게 하는 힘은 같다.
비수처럼 서늘한 초승달빛
내 온몸보다 크게 깨어있는 밤
금간 술잔 같은 설움 위로
희디흰 바람이 담긴다.
기다리지 마라.
푸르렀던 오만,
단풍 되어 저무는 강기슭에 서면
용서하지 못할 목숨도
갈대꽃 되어 흔들린다.
새벽 열차가 밟고 지나간
어두움의 자리,
비로소 귀를 여는 탱자나무잎,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기엔
이슬 속의 별빛이 너무도 멀고 너무도 맑다.
[황간역 꽃자리 2]
축하공연 전승찬 색소폰
정중섭 시낭송 - 담쟁이 /도종환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김지원 시낭송 - 기차 /강은교
기차
강은교
봄이 오면 기차를 탈 것이다
꽃그림이 그려진 분홍색 나무의자에 앉을 것이다
워워워, 바람을 몰 것이다
매화나무 연분홍 꽃이 핀 마을에 닿으면
기차에서 내려
산수유 노란 꽃잎 하늘을 받쳐 들고 있는 마을에 닿으면
또 기차에서 내려
진달래빛 바람이 불면
또또 기차에서 내려
봄이 오면 오랜 당신과 함께 기차를 탈 것이다.
들불 비치는 책 한 권 들고
내가 화안히 비치는 연못 한 페이지 열어젖히며
봄이 오면 여기여기 봄이 오면
당신의 온기도 따뜻한 무릎에 나를 맞대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은난초 흰 꽃커튼이 나풀대는 창가의 의자에 앉아
광야로 광야로
떠날 것이다.
푸른 목덜미 극락조처럼 빛내며
전은겸 시낭송 - 수선화에게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무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황간역 꽃자리 3]
뮤직캐슬뮤지션이 축하공연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이현옥 시인이 필자를 호출하는 바람에
즉석 시낭송을 했습니다.
역
한성기
푸른 불 시그널이 꿈처럼 어리는
거기 조그만 역이 있다
빈 대합실에는
의지할 의자 하나 없고
이따금 급행열차가
어지럽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아득한 선로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마한 역처럼 내가 있다
이현옥 시인이 황간역 플랫폼에 있는 양문규 시인의 시를 소개하며 낭송했습니다.
시역詩驛에 간다
양문규
늦가을 황간역 간다
그림자처럼 품속에서 영영 사그라질 뻔한 역驛,
플랫폼 일그러진 항아리에 고향이 들어 있다
대합실에 ‘시월詩月 시역詩驛, 시전詩展’ 열리고
‘간이역에 가을이 깊어갈 때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 역사驛舍를 이룬다
영동역 다음 황간역, 낡은 처마 끝 꽃등 환하다
때로는 늙은 아비도 못 알아본 체 빠르게 지나가는 열차 많아도
추풍령 다음 황간역, 헐벗은 나뭇가지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숯불 같은 햇살 곱게 내린다
늦은 가을 시역詩驛에 간다
축하공연 뮤직캐슬뮤지션 - 아모르 파티
홍명희 시낭송 - 바람의 기억 /홍명희
바람의 기억
홍명희
바람은
시작된 곳으로 되돌아간다.
바람의 흔적을 찾아
근원지로 달려갔을 때
이미 바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종적을 감춘 바람의 동굴 속에서
미세한 숨소리를 더듬어
그 옷깃을 잡으려는 것은
바람 속에 녹아 있는 에스메랄다 향을 모아
주머니 속에 담으려는 것과 같은 몸짓이다
벼락을 동반한 빗속이나
높은 산을 넘을 때를 제외하곤
바람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거미는
몸속에서 진액을 뿜어내어
바람의 방향을 따라
천사의 머리카락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양귀비 넋은 바람을 타고 흐른다
민들레 웃음도 바람을 타고 기구처럼 날아간다
지혜로운 여인은
젖은 옷을 말리고
아이들은 하늘로 연을 날린다
수명을 다한 꽃잎은
바람을 핑계 대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바람의 기억은
내려앉은 꽃잎 속에 담겨 있다.
이태진 시낭송 - 사평역에서 /곽재구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이현옥, 이주영 시합송 -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한용운
<이현옥, 이주영 시합송 -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한용운>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한용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애처롭기까지 만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시낭송콘서트를 마무리했습니다.
영동 삽화를 그리는 엄마들이 빨간머리 앤 작품들로 시낭송콘서트 마당을 한층 아름답게 꾸며줬습니다.
원미연 대표와 회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이현옥 시인의 사회 멘트 중에서 이런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시낭송은 바람에 꽃무늬를 놓는 일이예요."
봄이 오는 기쁜 날 황간역 마당에서 함께 했던 마음들,
작은 시골역과 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 가슴에
시의 꽃무늬 아름답게 피어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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