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사보 <푸른연금술사> 2021년 9·10월호의 '나의 철(鐵)·물(物)·점(點)' 코너에 '어느 시골역장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나의 이야기가 실렸다.
그동안 이런 저런 보도매체나 잡지, 사보 등으로부터 섭외를 받은 것은, 대부분 내가 블로그에 쓴 이야기가 계기가 된 것이었는데, 이번은 좀 특이한 경우였다.
2018년 10월말 대전의 '구석으로부터'에서 열린 <문화철도기획전-철도인>을 소개한 어떤 이의 블로그 글에 실린 나의 이야기를 우연히 읽은 푸른연금술사 편집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보내 온 자료를 보니 유명 시인 등이 기고를 하는 코너여서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한 평생을 철길에서 살아 온 시골역장의 이야기이니 '나의 철(鐵)·물(物)·점(點)' 코너에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기고를 하였다.
<푸픈연금술사> 표지
<나의 철(鐵)·물(物)·점(點)> 코너에 실린 이야기
<황간역의 엣 모습을 그린 커피 그림>
2016년 12월 황간역장직에서 퇴임을 할 때 찍은 사진
<푸른연금술사>에 기고한 내용은 이렇다.
나는 철도원으로 살았다. 18살에 시작해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42년 동안 철도원의 제복을 입고 살았다. 그 제복 속에서 철도원으로 생각하고 철도원으로서 행동하고 살아왔으니, 철도는 나의 삶 그 자체였다. 철도 현장에서의 삶의 대부분은 매일 매일 되풀이되는 일의 연속이다. 사람들의 삶을 담은 기차가 아무런 탈 없이 달릴 수 있도록, 레일을 받쳐주는 무수한 침목 중 하나와도 같은 그런 일상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숱한 직업 중에서 언뜻 단순하기만 하고 잘 드러나지도 않는 몫이지만, 내 일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살아왔다.
2016년 12월 17일은 내가 황간역에서 역장으로 마지막 근무를 하는 날이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날은 내가 철도에 들어 온 지 딱 40년이 되는 날이었다. 정년퇴직 후에도 임금피크제로 2년을 더 근무하게 된 상황이었지만, 철도원으로는 사실상의 퇴직을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 퇴근 후 이런 퇴임인사를 적어 내 블로그에 올렸다.
“1976년 12월 17일 철길에 첫 발을 내딛은 지 어언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옛적의 홍안 소년은 어느덧 반백의 시골역장으로 정년이라는 종착역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동안 때론 머물고 혹은 지나쳐 온 숱한 정거장들, 참 많은 일과 사람을 만났고 굴곡도 많았습니다. 한창 젊었던 시절에는 설익은 치기에 흔들렸고, 나이 들어서는 속도를 미처 맞추지 못해 그저 덜커덩 덜커덩... 완행열차처럼 달려 온 철도 인생이었습니다. 그래도 종착역에 무사히 당도했으니 행복한 철도원입니다.
무수한 인연들이 두 손 맞잡은 침목으로 받쳐 준 철길 여정이었습니다. 산모퉁이 외로운 철길에서는 신호등으로 비춰주고, 힘겨운 고갯길은 힘 보태 밀어준 손길과 눈길들, 그 고마움 잊지 못합니다.
미처 연소시키지 못하고 내뿜은 못난 그을음, 아픈 기억 속에 묻히고만 미안함, 세월은 무심히 흘렀지만 아직 지우지 못했습니다.
종착역... 폐쇄 위기의 황간역을 시와 그림이 있는 문화영토로 가꾼 것, 40년 철도원의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수고를 함께 한 고마운 인연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철도원 평생의 사명이자 마지막 긍지였던 시골역장 모자, 이제 저무는 철길 위에 내려놓습니다. 함께 한 여정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며칠 후, 블로그에서 시골역장의 퇴임 인사를 본 시노래 가수 박경하 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역장님의 철도 인생을 시로도 한번 써주세요.” 그동안 남의 시를 항아리에도 쓰고 그림으로 그려 시화전도 했지만 정작 자신의 시를 쓴 적은 없어 당황스러웠다. 시인도 아니고 이제 와서 뭘 꾸미고 더할 것도 없으니 그저 철도원으로 살아 온 내 평생을 담담하게 적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철도원’이라 제목을 쓰고 나니 40년 철길에서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이렇게 해서 쓰여 진 글에 시동중창단 멤버인 우현덕 씨가 곡을 붙이고, 그해 황간역 송년 음악회에서 연주되었다. 철도원에게 더없이 의미 있고 행복한 선물이었다.
‘시간 참 빠르더라. 기차처럼 지나간다. 새벽부터 한밤까지 기적소리 들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고가는 사람들, 떠나가는 뒷모습을 지켜주며 살았네.
덜커덩 덜커덩 덜컹, 덜커덩 덜커덩 덜컹, 덜커덩 덜커덩 덜컹
평생을 지나 온 길 기차처럼 달렸구나. 터널 지나 강도 건너 산들 너머 나란한 길, 돌아오는 그 길 위에 전호기를 펄럭이며, 멀어지는 기적소리 위로하며 살았네.‘
덜커덩 덜커덩 덜컹, 덜커덩 덜커덩 덜컹, 덜커덩 덜커덩 덜컹
<철도원- 강병규 작사, 우현덕 작곡, 수사와 노는 아이들 노래>
* 시간은 좀 지났지만, 이 역시 나의 이야기이니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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