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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정완영 시인을 황간역에 모신 날

황간역 이야기

by 강병규 2013. 12. 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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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일) 09:55분, 영동의 최정란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선생님 황간역에 가십니다."

10:31분 김천의 이상구 시인, "선생님 모시고 12:30-13:00 사이에 황간역 도착 예정입니다."  

11:35분 장귀순 시인, "백수 선생님 댁입니다. 12시에 출발하십니다."

최정란 시인이 "황간역장이 선생님 오시래요."라고 전화 드리니, "지금 와서 나 데리고 가" "입고 나갈 옷도 사야 돼"라며 좋아하셨다는,

한국시조문학의 개척자이자 태두이신, 올해 95세 되시는 백수 정완영 시인께서 드디어 황간역에 오시는 것이다. 

올갱이 해장국과 올갱이 부침개 드시러 한달에 한번 꼴로 황간에 오신다는,

그리고 수봉재 너머 수봉1리 외갓집 터도 가끔 들르시며, 황간을 아주 사랑하신다는 말을 시골역장이 듣고부터,

황간역은 백수 시인의 고향역이 되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황간역에서 기차를 타셨을 터이니, 시인께서도 어린시절부터 외갓집 고향에

오가실 때마다 황간역을 이용하셨을 것이고, 황간역은 당연히 [백수 정완영 시인의 고향역]인 것이다. 

역 부근 식당에서 올갱이 해장국과 부침개, 백주-낮에 드시는 막걸리는 백주라고 하셨다- 한 잔 드시고,

수봉재 너머 시인의 외갓집 터 있는 동네까지 갔다가,

14:30분부터 시작된 황간역 갤러리 황묵회 기념 작은음악회와 다과회에 참석하셨다.

 

시골역장이 시인을 위해 만들고 있는, 황간역 하행 승강장의 [백수 정완영 고향의 시 장독대]를 둘러보시는 시인 일행.

시인께서 읽으시는 것은 커다란 항아리에 <고향의 봄>에서 <고향의 겨울>까지의 고향의 사계절 동시를 담은 작품, 그 옆에는 <외갓집 가는 날>과

<외딴 집>도 있다. 아직 그림이 없는 데, 백수 시인의 시 삽화는 나중에 박홍순 화백이 그릴 예정이다. 명시와 명화의 만남^^*

시인의 시 중 고향과 어머니에 관한 시, 그리고 애제자들의 시로 꾸며질 시의 정원, 시골장독대처럼 돌로 받치고

봄이면 야생화도 심고... 아직은 제자 중 최정란 시인과 이영숙 선생의 시만 있는데 오늘 백수 시인을 모시고 온 이상구 시인과

장귀순 시인의 시도 곧 쓰게 될 것이고... 

 

상행 승강장에 있는 항아리 엄마와 아기 그림 뒷편에는 시인의 동시 <할머니집 가는 길>이 씌여 있다. 시인께선 이 시도 직접 읽으셨다. 

 

역 대합실 입구에는 백수 시인의<엄마 목소리>와 <봄이 오는 소리>, <고향보다 먼 고향>을 담은 항아리가 있다. 

마침 부산으로 가는 하행 열차가 출발하니, 바로 손을 흔드신다. 심성 저리도 해맑으시니 그토록 맑은 동시들이 퐁퐁 솟아 난 것이리라.... 

저 기차에 탄 이들, 승강장에서 손을 흔드는 저 노인이 바로 그 이름높은 백수 시인이시란 걸 알기나 할까?

 박홍순 화백, 장귀순 시인, 백수 선생님, 이상구 시인, 최정란 시인, 그리고 시골역장... 

오늘은 마침 황묵회 서예전시회가 열리는 날, 대합실에서 다과회를 겸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전 부총리 이경식 선생이 백수 시인을 소개하고 있다.  

"황간에 사는 여러분, 황간이 낳은 인물 두 명만 이름을 대 보시오." 

" 우리나라 최초의 조각가인 김복진과 문인 김기진 형제를 기억하시오. 고장이 낳은 인물을 잊으면 아니됩니다."

외람되지만, 시골역장이 황간역을 백수 시인의 고향역이라고 말하는 것도, 고향이 대시인을 기억해 드려야 한다는 의무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역문화를 살리는 길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우리에게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보여지게 할 것인지를

찾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백수 시인께 인사를 드리는 정구복 영동군수,

황묵회전 축하 인사말을 통해 "황간역이 최고의 문화역이 될 수 있도록, 군에서도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너무도 반가운 말씀을 하였다.  

어묵을 맛보시는 백수 시인

성이 <정>가인 역장댁은 백수 선생의 먼 친척 뻘이 된다. 시인이 첫 시집 <採春譜>를 들고 황간으로 시골역장의 장인을 찾아 오셨던 일을 말씀 드리고 있다.

1969년이니, 무려 44년전의 일이다. 

 

전승찬 씨가 백수 시인의 18번 <목포의 눈물>을 연주하고 

 시인의 제자 이영숙 선생은 스승을 위해 <가야금 산조>와 <랫 잇 비>를 연주하고

김천의 제자 이상구 시인은 백수 시인의 <고향생각>을 낭송하고

영동의 제자 최정란 시인은 백수 시인의 <고향 가는 길>과 <반야사 가는 길>을 낭송하고

뜬금없게도 시골역장은 시인께 <愛慕>를 불러 드렸다. "서리 까마귀 울고 간 북천은 아득하고..."

(실은 시인께서 오시는 날, 기회가 되면 불러드리려고 그동안 집에서 연습을 좀 했었다.^^!)

이 사진을 보니 시인께서 제자들과 시골역장의 정성을 가상하게 여기신 것 같다.^^!

연주에 맞춰 손뼉도 치시고...

특히 시골역장이 "落葉지는 嶺 마루에~"를 부를 때 역장댁에게, "저 영마루가 바로 수봉재야"라는 설명까지 해주셨단다. 

 암튼 이날은 시골역장, 한껏 고무된 하루였다.

 

 존경하던 대시인을 시골역에 모셨고, 그 덕분에 이처럼 좋은 시인들도 만나고

시인께서 좋아하신다는 말 듣고부터 따 두었던 모과랑, 월하 감으로 만든 홍시도 이렇게 드릴 수 있었고

가장 중요한 것, "이제 황간역은 선생님의 고향역입니다."라고 시인께 직접 분명하게 말씀 드렸고,

 이렇게 대합실 의자에 대시인과 함께 앉는 영광과 호사도 누렸고,

식당에서 시인께 큰 절 올리고 환영의 꽃다발도 드렸고, 올갱이국밥과 부침개도 대접하고...

(계산은 시골역장 몰래 정태경 황간마실 회장이 했지만^^!) 

 95세이신데도 당신의 자작시 전부는 물론 정지용 등 시인들의 시를 줄줄 낭송하시는, 신동으로 불렸다는 어릴 때의 그  비상함을 아직도 간직하신,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치 외할아버지와도 같은 친근한 정을 지니신 백수 정완영 시인.

존경해 마지않는 시인께서 당신의 호 白水처럼 건강하게 百壽하시길, 그래서 황간역에도 자주 오시길....

 그러면 시골역장은 해마다 이런 모과와

홍시를 할아버지 시인께 드리는 소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늘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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