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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역 대합실 양지바른 쪽 소파는 백수 정완영 시인의 자리입니다.

황간역 이야기

by 강병규 2013. 12. 2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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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5.(일) 오후

장귀순 시인 부부가 다녀간 지 한 시간 정도 지나고,

백수 정완영 시인께서 황간역에 오셨습니다.

시인의 따님이 운전을 해서 최정란 시인과 김영주 시인과 함께 모시고 온 것입니다.

어제 김천문화회관에서의 [백수 정완영 시와 노래의 밤]행사와 뒤풀이까지 한 터라,

제자들의 황간역 나들이 권유에 시인께선,  

마치 개나리처럼 귀여운(?) 노란 재킷까지 챙겨 입으셨답니다.

역광장에서,

'올갱이 해장국부터 드시고, 황간역은 나중에 천천히 둘러보시자'는 제자들의 말씀에 묵묵부답...

아마 당신 마음에 차지 않는 말에는 아예 대답을 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완곡한 거부 의사를 표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최정란 시인이 시골역장에게 말했습니다.

"역장님 보세요. 선생님이 이렇게 황간역을 좋아하세요." 

저야 물론 감지덕지죠^^*  해서 대합실로 모시면서 인사겸 여쭈었지요.

"선생님, 어제 김천의 행사가 성황을 이뤘다 들었습니다."

"예. 어제 잔치가 아주 컸습니다. 사람들도 한 400명 왔습니다."

제자들이 마련한 뜻깊은 행사를 시인께서 아주 흡족해 하신다는 것,

말씀하시는 음성과 표정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인께선 대합실의 햇볕 잘드는 쪽, 예의 그 소파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저번에 타 드린 커피를 절반만 드신 걸 알기에,

커피 믹스 세 봉지로 특별한(실은 달착지근한^^*) 커피를 타 드렸습니다. 한 잔을 다 드셨습니다! 

"이렇게 양지바른 데 앉아 있으면 추사의 시가 생각납니다."

하시면서 추사의 시도 읊으시고, 일본의 하이쿠도 몇 수 읊으셨습니다.

"나는 평생 시만 쓰고 살았습니다. 시 삼천 여 수에 시집도 서른 두 권 정도 냈는데,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나는 좀 잔망스럽게 살았습니다. 40대부터 지팡이를 짚었습니다. 일본사람들에게 기 죽지 않으려고 그랬지요. 

관공서에 들어가서도 일부러 지팡이를 들고서 말을 했습니다."

기개있는 선비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12월말이면 서울 아드님 댁으로 가신다는 말이 생각나서,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승강장에 선생님과 제자들의 시를 모은, '백수 시 정원'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 봄에는 대합실에서 선생님 시화전도 하겠습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꼭 황간역에 오셔야합니다."

시인께선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시골역장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허허. 내가 그 때까지 살겠습니까?"

"선생님의 호가 백수이시니, 반드시 백수하셔야죠. 백수하실 겁니다."

시골역장의 마음 한 구석이 내려앉았습니다.

 

마침 성영근 황간면장님이 미모의 여성들과 함께 역에 오셨습니다.

모임에 갔다가 황간역 구경시켜 주려고 왔답니다. 면장님도 은근 황간역 홍보대사입니다.

암튼 이 분들 오늘 계 탔지요.

"어머, 백수 정완영 시인님. 영광이예요~~~^^"

우리 면장님, 인물도 좋으시고 감성도 풍부하신 멋쟁입니다. 이 또한 시골역장의 복이지요.

"저 사람들 다 까마귀입니다."

시인께서, 대합실에서 사진을 찍으며 재미나게 놀고(?)있는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문득 시인의 시 애모의 '서리 까마귀 울고 간~'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왼쪽에서부터 김영주 시인, 백수 시인, 시인의 따님, 최정란 시인입니다. 

저 귀여운(?) 까마귀들이 한바탕 재롱을 떨다 제각자 날아가고 나면,

홀로 남은 노 시인의 마음에 '아득한 북천'의 쓸쓸한 바람이 불어올 것만 같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래도 참 대견한 사람들입니다."

노 시인의 제자 사랑은, 제자들의 스승 시인 사랑 합한 것 못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역을 나서시며 시골역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법은 경(耕)과 독(讀)입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한 자라도 더 배워야합니다."

존경하는 대 시인의 가르침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耕讀] 

최정란 시인의 말에 의하면,

김영주 시인은 '우리나라 여류시인 중에서 시를 제일 잘 쓰는 시인'입니다.

시골역장은 그런 말이 참 듣기 좋습니다.

자신도 여류시인이면서, '저 사람이 나보다 최고야' 하면, 듣는 사람은 둘 다 최고로 들을 수 있거든요^^* 

(시골역장에겐 다른 분들도 모두 최고이십니다.^^!) 

 

요즘 시인들이 황간역에 종종 오십니다. 시골역장으로선 영광이고 기쁜 일이지요.

특히, 이렇게 황간역에서 기차를 타시면 더더욱 반갑구요.

시골역과 기차, 그리고 시인... 너무 잘 어울리잖아요? ^^* 

 

귀한 시인과 이렇게 기념사진 찍을 수 있는 특권도,

시골역장이 누릴 수 있는 호사 중의 호사입니다.

 

인터넷에서 김영주 시인의 시를 몇 편 발견했습니다.

시골역장,

김 영주 시인의 팬이 되었습니다.

 

 

얼굴

                          김영주

 

얼굴, 얼굴 하면 억울한 굴레 같다

굳이 묻지 않아도 골골이 드러내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너는 분명

내 얼굴

 

거울 앞에 앉아서

내 얼굴 앞에 앉아서

한 번도 날 위해선 웃어주지 않는다고

어느 날

얼굴이 문득

얼굴에게 묻고 있다

 

 

 

 

큰 오빠

       김 영 주                                                

 

 

한참을 뜸들이다

그나마도 망설인다

 

천만 근 침묵보다

더 무거운

숨소리

 

"괜찮지?"

"잘 하고 있어요..."

 

눈시울이

뜨겁다.

 

 

인생

             김영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5 킬로미터의 속도로

가다가 쉴 곳 있으면 그냥 지나지 말고

두 바퀴

잠시 쉬었다가또 그렇게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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