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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정완영 시인, 그리고 할아버지

황간역 이야기

by 강병규 2013. 12. 2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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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가지말고 기다려!"

"아이고, 할아버지 땜에 내가 못살아..."

 

황간역 인근에 있는 한 올갱이해장국 식당 주인 아주머니에겐

오래 전부터 자주 오는, 농도 잘하시는 단골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역장이 제복 갖춰 입고 와서

안내도 하고 큰절도 드리고 하는 걸 보고

여늬 할아버지가 아니라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은

할아버지가 '아주 유명한 시인'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상구 시인이 '조국'과 '감자꽃'을 적어 주인 아주머니에게 주면서

'귀한 시이니 바바리 코트 잘 입혀 안방 벽에 잘 모시라' 했습니다.

이제 이 식당은 '국보급 시인 백수 정완영 선생님의 단골집'으로

대박이 날 기회를 잡은 것인데....

(근데, 역장이 공공연히 특정 식당 편 들자는 건 아니지만,

선생님의 시화를 액자로 거는 일에는 아무래도 시골역장이 개입을 좀 해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바바리코트로 덮어서 걸지야 않겠지만^^!)

 

백수 시인께서 요즘 황간역엘 자주 들르십니다.

영동문협 주관 문학의 밤 행사가 있던 2013.12.21.(토) 오후 17시 경에도

영동에서 열린 '난계국악단 정기연주회'에서 제자인 최정란 시인의 시 <여명>이

국악가요곡으로 초연되는 행사에 들렀다가

황간역에 오셨습니다.

 

원행에 피로하셨는지 오시자마자  대합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셨습니다.

물론 그 전에 앞에 걸린 서예작품 쭈욱 짚어 보시면서

"어허, 태산무언(泰山無言), 근검자애(勤儉慈愛), 청어람(靑於藍)... 참 좋다!"하셨습니다.

올해 95세 되시는 분이, 아직도 그만큼 사물이나 사람을 예사로 흘려보지 않으시는 것이지요.

잠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예전에 경상도 사람들이 다들 서울로 가서 돈도 벌고 출세로 했지만,

혼인만큼은 충청도 사람과 했지. 적어도 사람을 속이지는 않으니까."

충청도 태생인 시골역장, 속이 뜨끔했습니다.

 

백수 시인께서 오시기 약30분 전에 문학의 밤 행사를 마친 영동문인들이 저녁 식사하러

인근 식당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백수 시인을 그리 모시면 자연스레 지역 문인들의 인사를 받으실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이 날은 인연이 아니었습니다.

암튼, 시인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단골집의 단골방에 모셔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막걸리를 농부가 마시면 농주, 선비가 마시면 백주'라고 하십니다.

(시골역장 나름으론 '백수 시인이 드시니 백주'가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최정란 시인, 이상구 시인, 장귀순(시안) 시인.

최정란 시인은, 영동 사람이면서도 며칠 전 스승의 고향인 김천에서 [백수 정완영 시와 노래의 밤] 행사를 치러 내는 열정과 기획력, 추진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상구 시인은, 선생으로부터 시집 제목까지 받았으면서도 아직도 자신의 시 쓰기 보다는 스승 모시는 일에 더 열심인 듯합니다.

장귀순 시인은 노 스승을 모시기 위해 가평 집을 떠나 김천에 내려 와 있는 중입니다. 얼마전 6개월만에 집에 가더니 불과 3일만에 다시 내려왔습니다.

물론, 이런저런 여건이 허락하니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시골역장이 지켜보기에 이 시인들은,

한 세기에 한 분 오기 어려운 국보급 시인이신 백수 선생님,

90 넘어 연로하신 스승께 지금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또 그 일을 하는 분들입니다.  

생시의 사소한 일상에서 스승의 외로울 시간에 함께 있어 드리는 일이,

사후 기념관 짓고 동상 세우고, 기념 문학상 만드는 일보다

더 필요하고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스승께서 기력을 유지하시려면 이렇게 컴퓨터 키보드 글자 치는 연습이라도 꾸준히 하셔야 한다고 말씀 드리는 이상구 시인. 

기분이 흡족하시면 시와 노래가 무시로 퐁퐁 샘 솟는 95세 할아버지 시인의 저 무구한 시심, 그 깊이를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요?

 

시골역장은 덕분에 이렇듯 대 시인 옆에 앉아 함께 식사하고 말씀도 듣는 영광을 누립니다. 

 

이상구 시인이 <조국>과 <감자꽃>을 정성껏 쓰고 있습니다.

 

시인께서 감수를 하셨습니다.

"여기다 니 이름을 써라. 이상구라고, 아니면 이완영이라 쓰던지.."

 

 주인 아주머니가 글씨를 잘 읽으면 시인의 시가 제대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런대로 잘 읽었습니다.

 이 식당에는 <조국>도 좋지만 <감자꽃>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국보급 시인의 단골집을 황간의 문화명소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시골역장이 개입을 좀 해야할 일입니다.

 12.22일 저녁에도 시인께서 역 대합실에 들르셨습니다. 수안보 온천 다녀오시는 길이었습니다.

마침 잘 오셨지요. 뒤에 있는 호랑이는 영동곶감 축제 포토존으로 시골역장이 만든 것인데,

시인께서 호랑이 옆에 서 계신 기념사진 한번 찍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 소원이 이렇게도 풀리는군요.

저 호랑이는 12.22일 영동체육관에서 녹화한 전국노래자랑의 무대 소품으로도 쓰였습니다.

2014년 1월 26일(일) 전국노래자랑 영동군편으로 TV에 나올 예정이지요.^^*

 

 

왼쪽에서부터 최정란 시인, 백수 시인, 장귀순(시안) 시인, 최정란 시인의 모친, 시골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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