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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역, '삼오야서'의 '달' 같은 백수 정완영 시인을 모시고

황간역 이야기

by 강병규 2014. 4. 2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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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될라카믄 미쳐라 미쳐야 한다"

"선생님, 바람이 차요, 그만 들어가세요"

"아니다, 내 달 보러 안 나왔나"

 

달처럼 따라 오신다』

 

김영주 시인의 시 <삼오야서의 달>에 그려진 백수 정완영 시인의 모습입니다.

시골역장이 이번에는 그 '삼오야서'에 찾아 가 '달'과 같은 백수 시인을 뵈올 수 있었습니다.

 

2014.4.18(금) 아침에 최정란 시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나들이하고 싶어 하신답니다. 역장님이 김천에 가서 선생님을 모시고 올 수 있을까요?"

 

백수 시인께서는 시골역장에게 메밀과 국화향 그윽한 차와 달큰한 화과로 손님 대접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1984년도에 내신 시조집 '연과 바람'과 2001년도에 내신 시조집 '이승의 등불' 을 주셨습니다. 시인의 작은 따님에 의하면 '연과 바람'은 지금은 출판사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시조집이고, 이렇듯 책을 두 권이나 선뜻 내어주시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백수 시인께서는 따님에게 '강병규 詞仁'이라 쓰고 친필은 복사한 것을 붙여 주라 이르셨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역장이 나와 알고 교류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詞仁이라 쓴 것입니다." 

황송하고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지요.

저번 4.12일 황간역 음악회에 오셨을 때 백수 시인으로부터 받은 친필 서명입니다. 1979년도에 나온 동시조집 '꽃가지를 흔들듯이'-이건 인터넷 중고서점을 통해 아주 어렵사리 구한 것입니다-와 최정란 시인이 선물로 준 동시조집 '엄마 목소리'입니다. 일제시대 일경으로부터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지금은 글씨를 쓰지 못하신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떼를 써서 친필 그림(?)으로 받았습니다. 이로써 1969년도의 첫 시집 '채춘보'와 함께 시골역장의 보물이 5개로 늘어난 것이지요.

 

 백수 시인께서는 벽에 걸린 '삼오야서' 현판의 갑골문자를 자상하게 일러주셨습니다. 시인을 모시노라면 한시를 줄줄 외워 그 뜻도 풀이해 주시곤 합니다. 마치 한학에 깊은 할아버지와도 같습니다. ('삼오야서'는 예전 김천시 대항면에 있던 백수 시인의 서실이라 들었습니다)

"

그리고 당신의 침실 겸 서재도 보여 주셨습니다. '무유산방'입니다.

백수 시인의 거소에서 '꽃보다 어여쁜 적막'이 느껴집니다. 

직지사 입구 오른편 산중턱에 자리잡은 백수 문학관에 왔습니다. 노 시인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는동안, 아직도 그 어여쁜 적막을 지고 계신 노구가 마치 민들레 홀씨처럼이나 가볍게 전해져서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대단히 송구스런 일이지만, 시골역장은 백수문학관에 초행입니다. 내부 전시물이 인터넷으로 들러 본 것보다 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수 시인이 걸으시는대로 따라가다보니 제대로 살펴 볼 수는 없었습니다만, 

백수 시인께서 90 평생 쓰신 그 별처럼 많은 시를 이런 좁은 공간에 어떻게 담고 있는 것인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백수 시인께서 전시된 사진 속 인물들을 보면서 일일이 회고를 하십니다.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시인께서, 평생 일구신 시업을 "평생 헛 일 한 것"이라 자평하십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일기처럼 저렇게 치열하고도 맑은 정신으로 살아 내신 90평생을 '헛 일'이라 하십니다.   

백수 문학관과 관련된 일을 맡은 분들이 이미 잘 알고 준비하시겠지만, 지금처럼 시집과 유품, 점점 빛이 바래져 가는 전시물, 그리고 시화나 목판본 몇 점만을 전시하는 것으로는 후대에 백수 시문학의 본면목을 제대로 전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백수 시인의 시조 작품 전체를 디지털화하여 문학관을 찾은 이들이 찾아 읽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왕조실록도 디지털로 저장하는 데, 이런 일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겁니다. 그래서 키오스크나 디스플레이를 통해 검색할 수 있게 한다면 현재의 공간을 더 확충하지 않더라도 백수 시인의 작품과 삶 전체를 다 저장하고 전시하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백수 문학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첫 방문자로서의 단편적인 생각이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시골역장이 뵙기에 백수 시인께서는 글을 읽고 설명하는 것을 즐기십니다.

 

 

 

시골역장이 백수 시인의 동영상을 이렇게 올리는 것은,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일이긴 합니다. 시문학에 문외한이고 백수 시인을 뵈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주제에 너무 나대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은 아내로부터도 종종 이런 충고를 듣기도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걸 남에게도 강요하는 편이다. 당신 좋다고 세상 사람들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뭔가 일을 하려면 나대지 않고서는 하기 어렵습니다. 시골역장 노릇도 그저 주어진 일만해도 뭐랄 사람 없는데, 굳이 이런 저런 일 벌이는 것은, 한번 사는 삶인데 하고 싶은 일 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쁜 짓이 아닌 한, 남들이 미처 알아 주지 않더라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려고 합니다.

올해 96세 되신 큰 시인께서 이렇게 '온전히 詩로 사시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인연이 닿아 이런 기회를 만난 시골역장이 당연히 할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백수 문학관을 나와 인근에 있는 자명찻집을 찾았습니다.  찻집 벽에 걸린 도연명의 漢詩를 읽으시며 그 뜻을 풀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아무 것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촌가 하나 나타나듯, 막다르다 싶은 곳에서 새로운 것이 생겨납니다." 

"여기는 내 사랑방입니다. 신문기자나 귀찮은 사람들이 와서 이것저것 자꾸 물으려 하면 이리로 피합니다."

시인께 맘 쉴 곳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이 찻집 여주인은 시골역장에게도 참 편한 분입니다. 선생님 옆에 앉으시면 사진 찍어 드리겠다 하니까, 자신은 이미 많이 찍었다며 이렇게 잘 찍어 주는군요.

 

차 향기도 맑고

구석구석 백수 시인의 시 향기도 맑은 곳입니다.

 

 황간으로 와서 최정란 시인의 차로 갈아 타고 수봉재 너머 오도티 마을로 갔습니다. 백화산을 사랑하는 모임 문희탁 단장님을 만났습니다. 시골역장이 '백수 시인의 외갓집 터에, 외갓집 어머니의 고향을 그토록 그리워한 시인의 시비를 세웠으면 좋겠습니다'고 했더니,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시는 중입니다. 작은 시골마을에 도서관도 세우고 옛 문인의 문학관도 짓는 분이니, 백수 시인의 시비도 능히 세우실 분입니다.^^*

    

백수 시인께서는 7세쯤에 발등에 화상을 입는 사고(?) 의 여파로 인해 이후에는 외갓집에 못오셨답니다. 그래서 외갓집 터에 대한 기억이 아주 희미한 상태이지만, 백수 시인의 기억과 마을 주민의 말을 종합하면, 백수 시인의 외갓집 터는 아마 이 곳 정도일 거 같습니다. 저 밑에 커다란 동구나무가 있었고 수봉재 넘자마자 나오는 큰 마을, 예전에 집이 몇 채 있던 자리가 바로 여기니까요. 

 

 백화마을 식당에 들러 좋아하시는 간장 게장을 드시고, 황간역으로 오셨습니다. 황간역 갤러리에 있는 저 의자는 백수 시인을 위한 자리입니다. 맞이방 볕 잘드는 자리도 백수 시인의 자리입니다. 작년 12.1일 황간역에 처음 오신 이래 벌써 여섯번째로 오신 것입니다. 백수 시인처럼 큰 시인께서 시골역을 이렇게 즐겨 찾아주시는 것이 시골역장에겐 아주아주 큰 기쁨이지요.   

더욱이 백수 시인께서 시골역장이 차린 동시조전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황간역에 오시면 전시되어 있는 동시조를 다 읽으십니다. 전시회에도 벌써 두번째 오신 것입니다.

최정란 시인은 백수 시인을 잘 모십니다. 제자로서 큰 스승 시인을 대하는 자세만으로는 96세 노 시인을 편히 모시기 어렵지요. 할아버지 모시듯 자연스레 하는 게 상책일 겁니다. 최정란 시인은 바로 이렇게 살갑게 모시니, 백수 시인께서도 편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동시조를 읽으시고나서 "좋지, 좋다" 하십니다. 그런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마침 아들과 손님 마중을 나온 문희탁 단장님과 또 만났습니다. 

큰 시인으로 인해 맺어지는 참 좋은 인연입니다.

시골역장이 그린 백수 시인의 초상을 보며 최정란 시인이 "선생님, 이게 누구예요?"하고 물으면, "니 할아버지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참 편한 대화이지요.  

 

최정란 시인은 스승과 사진 찍는 걸 참 좋아합니다.

이렇게 모실 수 있을 때 많이 찍으라고 시골역장을 부추깁니다.

 

백수 시인과 따님이 동시조를 낭송합니다.

지난 4.12일에 미처 동영상으로는 못찍었던 몇몇 동시조 낭송 장면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 동영상에는 아주 귀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백수 정완영 시인께서 황간역을 '시가 있는 황간역'으로 만들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절별로 테마 시화전을 하면 좋겠다고 방법도 일러주십니다. 그리하면 철도역의 수준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거라 하십니다.

지금 시골역장이 하고 있는 일을 계속 잘하라고 격려하신 것이지요.

예. 황간역을 '시가 있는 아름다운 문화영토'로 잘 가꾸어 가겠습니다.

올 8월초 김천 직지사에서 열리는 '백수 시 축제' 때에도 건강한 모습 뵈올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고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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