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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돗토리 하야부사 여행 길에서 만난 사람들 - 마음과 마음을 잇는 것은

여행 이야기

by 강병규 2018. 8. 1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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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방문했던 하야부사역에 꼭 한번 다시 가고자 했던 것은 사람들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하야부사역이나 다른 여행지의 풍경보다는 그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이 더 강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만남, 그 인연들의 고마움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원맨카에서 만난 우연과 인연]

2018.8.4. 저녁 돗토리역 플랫폼,

21:04 하야부사역으로 가는 기차가 동차 1량으로 운행되는 원맨카여서 홈 의자에 앉아 있던 노인에게 타는 위치를 물어 보았습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가 찾아가고 있는 하야부사역을 지키는 모임의 니시무라 쇼지 회장의 매형이 되는 분이었습니다.

참 놀라운 우연이자 반가운 만남이었습니다.

 

 

 

 

일본말을 잘 모르는 필자를 위해 윤희일 기자가 설명해 준 대화 내용은 대강 이런 것이었습니다.

"올해 82세로 예전 일제 강점기 때 서울에서 사범학교 선생을 했었다.

자신은 비록 일본인이지만, 민족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를 마음 깊이 존경하고 있다.

이역만리에서 순국한 의사의 유해를 아직도 찾아지 못해 편히 모시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개인적으로라도 안중근 의사의 행적을 찾아보고 싶고, 그간 한국도 몇차례 왔었다.

어릴적 조선인 아이들을 비하하고 괴롭히는 일본인 또래들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던 것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역 소년 야구단을 이끌고 고시껜 대회에도 참가했었고, 아직도 사회 체육 활동을 하는 스포츠 마니아이다."

 

이분은 차 안에서 처남에게 폴더폰으로 전화를 걸더니 "나 지금 차안에서 자네를 찾아 온 한국인들과 만나 얘기를 하는 중이다."라고 자랑을 하더군요.

이렇게 스스럼 없이 만나고 사람 사는 정을 나누는 일- 한일간의 정치적인 현안을 떠나 민간 차원에서는 그 폭을 더욱 넓혀나가야할 일이다 싶었습니다.  

 

 

이분은 하야부사역 다음 정거장까지 가는 길이었고,

기차가 하야부사역에 도착하자 우리를 마중 나왔던 니시무라 쇼지 회장과 차창으로 손을 맞대며 반가워 하더군요.

그 장면을 미처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지만, 팔순의 매형과 칠순의 처남이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정을 나누는 모습이 참 정겨웠습니다. 

 

 

내일 있을 축제 준비로 한창 분주할 시간인데도 우리 일행을 맞이하러 나와 준 하야부사 주민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니시무라 쇼지 회장입니다.

필자가 6년만에 하야부사역을 찾아 온 것은 바로 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도 6년만에 찾아간 필자를 알아보며 반기더군요. 참 고맙고 기뻤습니다.

비록 말로는 통하지 못하지만, 마음을 나누는 일은 서로의 얼굴 표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가슴에 오래 머물게 된 짧은 홈스테이]

이번 하야부사역 여행에서 가장 특별했던 경험은 2018.8.4.~8.5. 이틀간의 홈스테이였습니다.

하야부사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다케모토 상의 집이었습니다.

 

 

다케모토 상은 경향신문 윤희일 기자와 교분이 두터운 사이입니다.

윤희일 기자가 도쿄 특파원을 할 때는 가족과도 친밀한 교류를 했답니다.

이번 홈스테이는 그 인연 덕분이었고, 특히 하야부사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한 필자를 위해

윤희일 기자가 주민들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배려를 해서 마련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깔끔한 다다미 방에 에어컨과 선풍기까지 풀가동을 했더군요.

필자가 알기에 일본인 가정에서 이런 방식으로 냉방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텐데

무더위 속에 찾아 온 방문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습니다.

 

 

늦은 저녁에 도착한 방문객을 위해 차려 낸 소박한 환영 만찬에서도 감동이 이어졌습니다.

시원한 맥주에 싱싱한 조개 관자와 오징어 회... 인근 바다에서 갓잡아 온 것이랍니다.

 

 

윤희일 기자는 성심당 쿠키 선물세트와 코레일 기념품 등을,

필자는 황간역 기념품과 필자가 그린 시화 엽서, 부채를 선물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케모토 상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어제 저녁에 찍은 사진으로 봐 가며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바쁘게 그린 것이다보니 미처 손을 보지 못한 티가 많지만,

다케모토 상에게 말로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라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뜻밖의 그림 선물에 마치 소녀처럼 기뻐해줘서 오히려 더 기뻤습니다.

 

 

참 정갈하고도 맛깔스런 식사였습니다.

특히 고기를 못먹는 필자를 위해 곧바로 생선을 구워 낸 그 배려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대부분 주민들의 차는 경차인데, 다케모토 상의 차고에는 중형의 고급승용차가 있습니다.  

중년 이후에 귀향하여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는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2018.8.6. 아침 식사입니다.

다케모토 상이 차려 낸 두 끼의 아침상은 여느 호텔의 메뉴보다도 더 정성스럽고 맛있는 식사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녁때면 늦은 시각까지 기다렸다가 차려내던 소박한 만찬 안주상도 잊지못할 정성이었습니다.

 

 

하야부사를 떠나는 날 아침입니다.

오른쪽부터 히가시구치 사무국장, 다케모토 상, 이세키 상입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아침에 침구를 수거하러 왔던 세탁소 주인도 필자를 알아보더군요.

필자가 한국의 철도 역장이란 것과, 지난번 방문 때 회식자리에서 인사말을 한 것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다케모토 상이 우리 일행을 하야부사에서 약 30분 거리인 지즈역까지 직접 태워주겠다고 나섰습니다.

 

 

 

 

다케모토 상이 우리 일행에게 홈스테이를 제공한 것은 윤희일 기자와의 개인적인 친분이 우선 작용한 일이지만,

하야부사역 축제를 찾아 온 방문객들에게 기꺼이 홈스테이 편의를 제공하는 마을 주민들과 뜻을 함께하는 측면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야부사역 축제의 성공을 위해 이렇듯 마을 주민 전체가 나서는 것입니다.

작은 시골마을 하야부사가 역 축제를 통해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지고 지역사회 활성화에도 기여를 하게 된 원동력이 짐작되었습니다.

사진은 다케모토 상의 집 발코니에서 보이는 하야부사 신사입니다.

 

 

다케모토 상의 집 마루에 있는 오래된 질화로입니다.

언어도 다르고 생각과 사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가슴에는 이런 화로를 품고 산다는 점에서는 통하는 사람들...

다케모토 상의 단아한 모습과 정겨운 이 화로는, 하야부사와 사람들을 생각하는 기억 속에서 늘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하야부사역의 마음을 잇는 사람]

하야부사역 역무실 매장에 들어서서 왼쪽을 보면 조그만 갈색의 종이박스가 있고,  

그 안에는 온통 스티커를 붙인 녹차병 4개가 들어있습니다.

 

 

그 녹차병에는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2012년 8월 하아부사역 축제를 방문했을 때 귀국하기 전날 돗토리 시내 식당에서 하야부사역을 지키는 모임의 니시무라 회장과 히가시구치 사무국장 등

일행과 함께 거의 새벽까지 여흥을 즐겼었습니다.

아침 일찍 돗토리역에서 기차를 탔는데,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히가시구치 사무국장이 우리 일행을 위해 하야부사에서 돗토리역까지 녹차를 사들고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 때 필자는 큰 감동을 느꼈고, 일행에게 녹차를 마시고 난 빈 병을 달라고 했지요.

 

 

그리고 하야부사역 축제 때 찍은 사진들 담은 스티커를 인쇄해서 플라스틱 녹차병 4개에다 하야부사역의 추억을 일일이 오려 붙였고,

 

 

 

 

2012년 11월 24일 한국으로 초청한 하야부사역을 지키는 모임 방문단에게 기념품으로 증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걸 하야부사역 사무실에 이렇게 전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만든 이는 하야부사역을 지키는 모임의 히가시구치 사무국장입니다.

2018.8.5. 돗토리 시내에서 하야부사역 방문단과의 만찬 자리입니다.

10주년을 맞은 하야부사역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마무리까지 하느라 몹시도 피곤할 텐데도

만찬을 마치고 하야부사까지 윤희일 기자와 필자를 태워가겠다고 승용차를 가지고 왔더군요.

 

 

왼쪽에서 두번째는 이세키 교수, 오른쪽 이시모토 교수 다음은 이세키 교수의 사위, 그리고 딸입니다.

한국 방문단을 환영하기 위해 함께 온 지인들입니다.

이세키 교수의 딸은 한국에 교환 학생으로 올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만찬 자리에서 하야부사역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황간역을 문화플랫폼으로 가꾼 이야기와 함께 감사의 뜻으로 황간역 기념품을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하야부사역 축제를 축하하고 하야부사의 꿈-와카사역 증기기관차로 관광열차를 운행하는-이 이뤄지기를 축원하는 마음을 담아

필자가 그린 부채를 증정했습니다.

 

 

히가시구치 사무국장은 여러모로 대단한 활동가입니다.

하야부사역과 축제의 실질적인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리 보입니다.

지난 2012년에는 본인이 아이디어를 낸 돗토리 특산품이라며 아주 맛있는 오징어먹물 아이스크림을 선보이더니,

이번에는 돗토리대학생 등과 함께 운영하는 자연식품 저널 책자를 보여줍니다.

그림만으로도 히가시구치 사무국장의 눈부신 활약상을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히가시구치 사무국장의 성공사례는 일본의 주요 신문에도 소개가 되었더군요.

 

 

윤희일 기자가 저렇게 '엄지척'을 할만한 일입니다.

 

 

이번에도 이세키 교수와 함께 아침 일찍 찾아 와 윤희일 기자와 필자를 전송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잇는- 사람을 진심으로 위하려는 따뜻한 배려를 다시한번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보고싶었던 사람들을 만나고, 또 보고 싶어질 사람들을 새로 만난- 참 고마운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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