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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역 전철수(轉轍手)와 시인(詩人), 시의 역장(詩의 驛長)

황간역 이야기

by 강병규 2014. 8. 1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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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역장은 스스로를 '전철수(轉轍手)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역에 와서 기차를 타거나, 기차에서 내려 갈 곳으로 가는 것을 돕는 자신의 역할이,

마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전철수가 하는 일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린 왕자가 전철수를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야?"

어린 왕자가 물었습니다.

"한번에 천 명씩 손님을 태운 기차에 신호를 해 주고,

신호하는 대로 열차가 손님을 오른쪽으로 실어 가기도 하고,

왼쪽으로 실어 가기도 하지."

전철수가 대답했습니다.

그 곳에 불을 환하게 켠 급행 열차가 천둥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와,

전철기의 조종실을 뒤흔들어 놓고 가 버렸습니다.

"모두들 매우 바쁜 모양이군요. 저 사람들은 무엇을 찾고 있나요?"

 (중략)

"저들은 아무것도 쫒지 않는단다. 저 속에서 잠을 자고 있지 않으면, 하품을 하고 있지.

아이들만이 창유리에 코를 바짝 밀어붙이고 있지."

"아이들만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거예요.

헝겊 인형을 가지고 노는 데에 시간을 보내고, 그 인형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지요.

만약 그 인형을 빼앗긴다면, 아이들은 울어 버릴 거예요..."

하고 어린 왕자가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행복하구나."

하고 전철수가 말했습니다.

 

시골역장은 시인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시인(詩人)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멋스러움이 너무 좋습니다.

 

김춘수 시인은 <왜 나는 시인인가>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읽었습니다.

'존재하는 것의 슬픔을 깊이 느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그중에서도 사람이란 더없이 슬픈 존재다.

사람으로 태어난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깊이 깊이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시인이다.'

(이하 생략)

 

그리고, 백수 정완영 시인의 <시를 쓰는 밤>이란 시에서 바로 그런 시인(詩人)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골역장이 나름 생각하는 시인(詩人)은,

온 세상 잠든 밤에도 눈 초롱 빛나는 사람,

온 세상 젖어든 밤에 귀 소록 열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런 시인, 백수 정완영 시인을 시의 역의 역장, '시의 역장(詩의 驛長)'으로 모셨습니다.

지난 8.9(토) 저녁 백수 정완영 시인과 함께 하는 제20회 황간역 음악회-'시인의 외갓집 가는 날' 공연무대에서

시골역장이 백수 정완영 시인께 무례한 행동을 했습니다.

자신이 쓰고 있던 역장 모자를 벗어 올해 96세 되신, 한국현대시조의 중흥기를 연 시단의 거목 백수 시인께 씌워 드린 것입니다.

그것도 시인께서 늘 쓰고 다니시는 모자를 벗기우고, 보잘것 없는 시골역장의 모자를 씌워 드렸습니다.

그것은, 시골역장이 스스로를 전철수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아는 좋은 시인은 여럿 있지만, 황간역 '시의 역' 역장으로는 백수 시인이 가장 적합한 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시의 역장이시니 당연히 역장 모자를 쓰셔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리 한 것입니다.

시골역장의 모자가 그 순간만큼은 '시의 역장'의 영예의 상징이었습니다.

 

 

 

물론, 음악회 시작 전, 역 대합실 갤러리에서 성악가와 연주가들과 백수 시인을 뵈올 때,

모두의 박수와 환호 가운데,

"시의 역장이시니 역장 모자를 씌워 드리겠습니다."하고 미리 역장 모자를 씌워 드렸었습니다.

백수 시인께서도 흡족해 하셨습니다.

지난 4월에 황간역에 오셨을 때 '황간역은 시가 있는 역이 되어야 한다'고 이르신 백수 시인의 말씀을 따라,

이 날 황간역을 '詩의 驛'으로 선포한 것이구요.

 

  

 

시골역장이 생각하는 황간역의 역할은 이렇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의미의 기차역입니다.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곳입니다. 그러기 위해 잠시 기다리며 머물거나 지나가는 통로로써의 공간입니다.

어린 왕자가 전철수를 만난 곳이 바로 그런 장소로써의 역입니다.

이런 역할은 지역 인구의 감소와 대체 교통수단 증가에 따라 점차 축소되고 있습니다.

더이상 지속 가능한 역할이 아닙니다. 

 

또 하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기차역입니다.

1905년 문을 연 이래 올해로 109년동안 충북 영동의 4개 면과 경북 상주의 3개 면 사람들의 추억과 애환이 서린,

지역의 소중한 문화공간입니다.

시골역장이 황간역을 '지역주민과 함께 가꾸는 아름다운 문화영토'라고 내세우는 까닭입니다.

역이 지닌 문화적 가치를 찾아내고, 공간을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로 엮어 나가면,

시골역의 새로운 역할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시골역장의 확신입니다.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확산시킬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역할입니다. 

그 문화 가치의 중심 테마를 詩로 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황간역이 시의 역이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화공간으로써의 역할을 잘 하면 할 수록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기차역의 역할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것이죠.

기차 안 타던 이들도 기차를 타고 황간역에 많이 올테니까요.

 

시골역장이 그리는 시의 역은 이런 역입니다.

 

첫째, 시가 있는 역입니다.

작년 8월의 항아리시화전을 시작으로 지금은 역 마당과 대합실, 승강장 등에 약 130여 점의 시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시를 테마별로 분류 전시하고, 상설 전시 공간을 확충하는 과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째, 시인이 머무는 역입니다.

역구내 하치장 등 빈터에 시인을 위한 집필공간- 가칭 '기찻길 옆 작은 방'과 승강장 대합실에 화목난로가 있는 '시인 카페'를 만들고 싶습니다.

시인이 기차를 타고 와서 머물다 기차를 타고 가는 역, 기차 타러 왔다가 우연히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역을 생각합니다.

 

셋째, 시를 나누는 역입니다.

시의 역 가곡음악회, 시 낭송회, 시의 역 백일장 등 시를 함께 나누고 시의 저변을 넓히는 일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황간역~황간면~수봉재~오도티 마을에 이르는, 백수 정완영 시인의 외갓집 가는 길을 따라 걷는 시의 순례 코스를 꿈꾸고 있습니다.

길 옆 작은 터마다에 백수 시인이 외갓집 고향과 어머니를 그린 주옥같은 시로 시비를 세우고 꽃밭으로 이쁘게 가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현되면 이 또한 시인을 위해서나 지역을 위해서나 교육과 문화, 관광 코스로 활용가치가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암튼 시골역장, 아직은 꿈을 더 꾸고 싶습니다. 유리창에 코를 바짝 밀어붙이고....

하지만,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시골역장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질 일이 결코 아니란 것,

그래서 바로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함께 하실 분들.... 있으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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