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보다 먼 고향
정완영
고향을 찾아가니 고향은 거기 없고
고향에서 돌아오니 고향은 거기 있고
흑염소 울음소리만 내가 몰고 왔네요.
어릴 적 떠났던 고향을 다시 찾아 온 나그네가
변해버려 낯설기조차한 옛 고향 땅에서 느꼈을 심사를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한 시는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황간역 구내 선로변 공터에 장독대를 만드는 중입니다.
이 장독대에는 마치 흑염소 울음소리처럼 먹먹한 사연이 담겨있습니다.
타향에서 살다가 말년이 되자 어릴적 떠났던 고향을 찾아 여생을 의지하려던 어떤 이가,
끝내 고향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다시 도회로 떠나가면서 옥상에 남겨 놓은 옹기 항아리들을
통째로 고향역에 기증했습니다.
엊그제 황간시설관리반 김응규 씨와 함께 옹기 항아리들을 날랐습니다.
옥상에 있던 크고 작은 항아리 15개를 가파른 계단을 통해 내리는 것이 퍽 힘이 들더군요.
그래도 친절한 주인 아주머니 덕분에 꽁꽁 싸매 잘 실을 수 있었습니다.
진작부터 이곳에 장독대를 만들려고 돌도 날라다 놓았던 것인데,
안성맞춤의 장독대가 생긴 것입니다.
장독대를 제대로 쌓는 것은 날씨가 좀 선선해지면 시작할 예정입니다.
독 안에는 몇 해를 묵었는지 모를 정도로 결정체로 굳어 버린 간장이며
고추장이 들어있습니다.
된장을 퍼내 비어있는 독 안에서는
마치 흑염소 소리 먹먹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고향보다 먼 고향- 실상 내가 꿈에도 그리는 어릴 적 내 고향도 지금 찾아 가면
고향은 거기에 없을 테지요.
고향에서 돌아 오면 아련한 기억 속 고향의 모습이 또 떠오르겠지요.
흑염소 울음소리만 내가 몰고 온 이들의 마음이
이 작은 시골역에서 평온하게 머물게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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