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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역 시골역장의 생각과 소망 - 철도역을 지역문화의 플랫폼으로

황간역 이야기

by 강병규 2016. 6. 2.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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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3년도 「영동예술」 지에 특별기고문으로 실린 글입니다. 당시 영동예총 최경숙 사무국장이 황간역을 둘러 본 후 황간역 이야기를 소개하면 좋겠다고 해서, 분수를 넘는 일을 한 것입니다. 펜보다는 생각이 앞서는 문장력이다 보니 표현은 서툴고 오자(誤字)도 몇 군데 있어 민망한 수준입니다. 오늘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읽어 보니, 이런저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황간역 문화영토의 어제와 오늘의 변모 과정과, 내일을 위한 과제 등을 살펴보는 자료로써는 소용이 되겠다 싶습니다. 현재의 황간역 모습은 이 글을 쓸 당시와는 매우 큰 차이가 있지만, 기록으로 남기는 의미에서 오자(誤字) 등 일부만을 수정해서 올립니다.   

 

 

<사진설명 : 2016년 1월 충북일보 이승민 사진작가가 황간역 취재 때 찍어 준 시골역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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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영동예술' 특별기고문>

 

 

 

철도역을 지역문화의 플랫폼으로

 

                                                         강병규 / 황간역장

 

대전 부르스와 IT의 플랫폼(Platform), 그 의미

 

승강장(昇降場)은 역에서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곳이다. 영어로는 플랫폼(Platform)이라고 한다.  이 플랫폼이란 철도 용어에서 나는 두 가지의 이미지를 연상한다.

 

그 하나는, 가수 안정애 씨가 부른 <대전 부루스>에 나오는, ‘기적 소리 슬피 우는 눈물의 플랫트 홈’이다. 구성진 가사 그대로 만나고 헤어지는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아련한 추억의 공간으로서의 역 승강장-플랫폼이다.

 

또 하나는, IT에서 말하는 플랫폼(Platform)이다. 인터넷에 있는 설명에 의하면, 플랫폼은 구글(Google), 이베이(EBay), 애플(Apple) 마이크로소프트( Microsoft), 페이스북(Facebook)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는 공간이며,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서로 연결 돼 비즈니스가 발생하는 장터이기도 하다. 현대 생활을 하는 우리는 단 하루라도 이들 플랫폼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생활할 수 없다. 현대의 새로운 생활문화공간으로서의 플랫폼이다.

 

인터넷 플랫폼을 먼저 장악한 기업이 세계 시장의 지배자가 되는 세상이라고도 하지만, IT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자 평생을 철도인으로 살고 있는 내겐 철도 용어인 ‘플랫폼’이 현대 생활을 상징하는 단어가 된 사실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 철도역의 새로운 역할과 가치를 모색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역을 단순히 승객이 타고 내리는 승강장의 측면으로만 보는 입장에서는 황간역은 채산성이 없어 경영개선이 필요한 적자 역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시각으로 역을 보는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황간역에는 앞서 말한 ‘대전 부르스의 플랫트 홈’과 ‘IT의 플랫폼’, ‘추억의 공간’과 ‘현대 생활문화공간’이라는 두 가지 기능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골역 승객들이지만 대부분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스마트폰 세상에서는 심리적인 거리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거리상의 공간으로는 도시와 시골로 떨어져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이미 공간과 거리를 초월한 공동 플랫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황간역의 승강장에서 기차를 타지만, 승객들은 어느새 각각의 IT 플랫폼에서 여행을 시작한다는 비유가 적합하지 않을 까 싶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황간역이 승객들에게 ‘추억’이라는 이미지에 고착된 시골역의 역할에 머문다면 길은 없다.

반면에 한적한 시골역이란 친근한 정서적 자산을 바탕으로 삼아 IT 시대의 생활문화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황간역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의 길은 열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진설명 : 관광버스를 타고 온 여행객들이 황간역 플랫폼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황간역에는 매주 주말과 공휴일마다 2~3대의 관광버스가 단체여행객을 태우고 온다.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황간여행의 필수 코스이기 때문이다> 

 

 

<사진 설명 : 국내 정상의 아이돌 그룹 엑소 EXO의 멤버 시우민과 첸이 황간역 여행을 다녀 간 이후, 전국 각지의 EXO 팬들이 거의 매일같이 황간역을 찾아 와 플랫폼에서 인증샷을 찍고 황간여행 노랑자전거를 타고 월류봉까지 투어를 한다. SNS로 황간역 여행기를 전하기 위해서이다. >

  

기차가 아닌, 문화(文化)를 타고 가는

 

소설가 박범신 선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몇 해 전 간이역에 문학관을 조성하는 계획과 관련하여 강경역에서 만났을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문화 생산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배급시스템이 문제다. 예컨대 예술의 전당이니 하는 대표적인 문화공간은 거의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데다 그나마 일반 서민들이 이용하는 지하철역에서는 한참 떨어진, 승용차로나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문제다.

 

철도의 역할이 수송이니, 이제는 철도도 문화를 실어 나르는 기차로, 문화 배달시스템을 운영하는 철도가 되어야 한다. 문화가 흐르는 철도, 사람들이 기차가 아니라 문화를 타고 간다고 말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그게 문화국가이고  선진국이다. 최고급 문화가 서민들의 발끝에 바로 닿아야 한다. 문화 예술의 중앙집중화 폐단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철도가 고급문화를 지방으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스스로 문화적인 시골역장임을 내세우는 내겐 금과옥조와도 같은 이야기들이다. 선생의 이야기를 되새길 때마다  황간역이 비록 시골역이지만, 오히려 한적한 시골역이니까 가능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을 새삼 다지곤 한다.

 

 

<사진설명 : 2012년 7월 5일 논산 탑정저수지 부근에 있는 박범신 선생의 집필실을 방문했을 때 사인을 받는 모습. 대전충남본부 재직 당시 작가의 고향에 있는 간이역을 작가의 문학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어느 정도 구체적인 그림까지 그렸었다가 계획은 유야무야되고, 시골역장은 황간역으로 발령이 났는데 선생께 자초지종 결말을 설명 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사진 설명 : 2016년 5월 19일 서울지역에서 활동하는 철길 따라 사생회 회원 화가들이 열차가 오가고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황간역 플랫폼에서 사생작업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심사위원 등 중견 작가들이 시골역 플랫폼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 광경은 '문화를 타고 가는 황간역'이기에 가능한 모습이다.>

 

 

<사진 설명 : 기차 타러 왔다가 홈 대합실에서 우호 지상윤 화가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진지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어린이. 이 아이의 마음에 심어진 이런 풍경은 미래의 고향역 문화자산이 될 것이다.>  

 

  

문화역 서울 284, 서울역사(驛舍)의 변신

 

철도역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서는 이미 철도뿐만 아니라 문화계 일각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다각도의 모색을 하고 있다. 옛 서울역사가 ‘문화역 서울 284’로 변신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1925년에 현재의 르네상스식 건물로 완공된 경성역은, 일제 식민지 제국주의의 첨병이자 서구화된 외래 문명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당시 한국의 가장 첨단 근대문명과 문화적 파장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역사 내부의 각종 신식 공간들, 예를 들어 끽다점과 양식당 등은 당시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고급문화의 온상이었다고 한다.

 

2004년 새로운 민자역사가 신축될 때까지 80년 동안 서울역사로 사용됐던 이 건물은 1981년 사적 제284호로 지정되었다. 2011년 원형 복원 공사를 마친 후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문화역 서울 284’란 이름에 걸맞게 연중 다양한 공연, 강연, 전시 등의 문화 프로그램을 대부분 무료로 운영한다.

 

관리주체인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 위탁운영하고 있다. 승객들이 이용하는 실제 서울역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공간이란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철도 역사가 수준 높은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최초의 성공적 사례란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간이역, 디자인을 입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행하는 ‘문화디자인프로젝트’도 간이역을 되살려 내는데 큰 결실을 거두고 있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11년부터 시설 개선 중심의 공공디자인 사업에서 벗어나,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반영하고 지역 주민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문화와 디자인을 결합하여 소규모 간이역 등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거나 지방에 방치되어 있는 유휴공간을 문화적 공간으로 조성하는데, 올해에는 그 대상 범위를 넓혀 간이역뿐만 아니라 지역에 방치되고 있는 소규모 유휴공간을 포함하여 지자체 공모를 실시하여 문화 기획, 디자인 등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서류 심사 및 현장 심사를 거쳐 지역 및 공간의 잠재력과 지역 주민의 활용 가능성, 지역 문화예술단체 연계성 등이 우수한 지역을 선정하고 있다.

 

선정된 지역에는 간이역 및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지역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디자인 리모델링을 지원하고, 개선된 공간 안에서 주민이 참여하는 문화 프로그램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동안 이 사업을 통해 충북선의 달천역, 호남선의 연산역, 영동선의 분천역, 군산선의 임피역 등 많은 간이역들이 지역의 새로운 문화명소로 거듭나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 문화디자인프로젝트사업은 2014년도 사업을 끝으로 현재는 폐지된 상태이다)

 

이 밖에도 코레일에서도 공모를 통해 간이역에 대한 민간 운영자를 선정하여, 경부선의 직지사역과 고모역, 경전선 진상역 등을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등 간이역 운영의 새로운 역할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황간역, 지역 주민이 만든 문화영토

 

금년 봄부터 황간역은 의미 있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썰렁하기만 했던 대합실에는 수십 종류의 야생화 분재와 꽃 지게, 옛날 황간역사 모형, 황간고을 풍경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역 화단에는 초가집 지붕 원두막과 포도 아치, 솟대, 허수아비 등이 서 있고, 계절 따라 각종 꽃들이 만발한다.

 

난방 대합실을 갤러리로 리모델링하여 매달 시화전, 그림전, 사진전 등을 열고 있다. 역광장과 승강장 등에는 시와 그림을 담은 옹기항라리 70여 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특히, 8월에는 6 차례의 ‘한여름밤의 간이역 작은 음악회’를, 10월에는 3 차례의 ‘가을 저녁 작은 음악회’를 여는 등, 올해만도 총 9회의 역광장 음악회를 열었다. 이 음악회에는 유치원생에서부터 70대의 전직 마을 이장, 대학교수와 세계적 성악가에 이르기까지 연인원 112명이 순수한 재능기부로 출연하였다. 장르도 색소폰, 기타, 비이올린, 플롯, 오카리나, 합창, 독창, 사물놀이, 판소리, 벨리댄스, 시낭송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다.

 

이런 일련의 문화 행사는 1905년에 황간역이 생긴 이래 최초의 일이자, 전국적으로도 황간역과 같은 규모의 시골역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의미가 있는 것은, 이런 문화 행사의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고, 기획과 준비, 무대 설치와 진행,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인 주민 참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즉, 지역 주민들이 황간역을 지역의 문화영토로 만들어 낸 것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대부분의 행사를 마친 상태인데도 많은 이들이 황간역 문화 행사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줄곧 지켜보던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서울 등 외지의 공연 전문가들로부터도 앞으로 황간역 문화 행사에 동참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있다. 난 이 점에서 황간역이 지역 문화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사진 설명 : 2013년 8월 2일 제1회 황간역음악회를 열면서 마을주민들과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는 모습. 이 날 플래카드에 '간이역'이라고 썼다고 동네 분에게 야단을 맞았다. 황간역은 단 한 번도 간이역이었던 적이 없는, 애초부터 제대로의 역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고향역에 대한 이런 자부심을 일깨운 것- 황간역 문화행사의 가장 의미있는 첫 성과였다.> 

 

 

<사진 설명 : 2013년 8월 2일 제1회 황간역음악회가 시작 되기 바로 전, 월류봉 하늘에 나타난 용이 불을 뿜는 듯한 형상의 신비로운 구름. 이 날 사람들은 황간역에 상서로운 징조라고 입을 모았고, 이후 황간역에서 음악회를 열 때마다 연꽃이나 수련이 피어나는 등 신비한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황간역, 지역 문화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나름 생각하고 있는, 황간역이 지역 문화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방향은 대략 이렇다.

 

첫째는, 지역이 참여하는 마당으로서의 플랫폼이다.

 

올해는 문화 행사를 통해 황간역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리고 이들은 참여 기회만 주어진다면 어느 정도는 자발적으로 지속적인 참여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지역사회에서 의사결정단계에 있는 기관이나 단체의 관심과 참여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황간역 문화행사 진행과정에서 영동군과 황간면은 물론, 매곡과 상촌, 추풍령면 등의 지자체 관계자들이 큰 관심을 갖고 성원을 해 준 점이다. 한국예총 영동지부와 모동 지역의 시민단체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 지역의 주민자치단체들이나 지자체, 문화계 등과의 체계적인 협력체계를 갖추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특히, 황간역은 매우 넓은 역세권을 가지고 있다. 충북 영동군의 황간, 매곡, 상촌, 추풍령 일부와 경북 상주시 모동과 모서, 화령 지역에서도 황간역을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광범위한 역세권내 지역 주민들과 지자체와의 연대가 이루어진다면 매우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철도 스토리의 플랫폼이다.

 

흔히들 철도 문화라면 간이역에 관한 시나 음악, 철도박물관의 전시품 정도를 떠올리는 것 같다. 철도를 소개하는 신문 기사의 제목도 대부분 ‘추억으로 가는 간이역...’이나 ‘기차 여행의 낭만...’ 등으로 시작하기 일쑤다. 하지만 황간역 구내를 천천히 둘러보면 철도는 무궁한 스토리의 보고(寶庫)이다. 황간역 108년 세월동안 얽힌 이야기들은 차치하고, 철길 하나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두 갈래 레일의 양쪽 내측간 거리는 143.5cm인데, 이는 과거 로마시대에 전차를 끌던 말 두 마리의 엉덩이에 맞게 만든 전차의 바퀴 간격이 꼭 그 수치였기 때문에, 기차를 만들 때도 레일이 결국 그렇게 설계된 ‘경로의존성 이론’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라든지, 레일과 레일이 갈라지는 지점인 분기기에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명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 표현된 인생행로에서의 선택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든지 하는 것 등이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미처 잘 모르는 이야기를 재발견해 내거나, 기왕 철도에 관한 문학과 음악 등으로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스토리와 프로그램을 재창조하여 공유 확산하는 철도 문화의 플랫폼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또한, 역사(驛舍) 자체가 등록문화재이며 난계 박연의 고향인 심천역은 ‘국악 테마역’으로, 영동역은 ‘와인 테마역’으로, 황간역은 ‘시가 있는 고향역’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사각형 급수탑이 남아 있는 추풍령역은 ‘구름과 바람의 테마역’으로, 영동 지역에 있는 4개의 역을 각각의 스토리가 있는 테마역으로 육성해 나가는 방안도, 지역 문화와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검토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사진 설명 : 2015년 7월 16일 영동 이수초등학교 5학년 2반 어린이들이 황간역에 철도문화체험 왔을 때, 황간역 플랫폼 우체통을 처음 사용개시하는 이벤트를 한 후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이날 시골역장이 들려주는 철도 이야기에 귀 쫑긋 눈 초롱했던 아이들-시골역장의 보람이자 기쁨이었다.>

  

셋째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서의 플랫폼이다.

 

현재의 황간역사는 마치 성냥갑처럼 네모 모양의, 어느 쪽에서 봐도 멋진 구석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밋밋한 건물이다. 나 역시 부임 당시에는 ‘이런 건물 가지고 무얼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생각을 뒤집으니 달라졌다. 아무 것도 없으니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요즘은 지역 주민과 승객들로부터 역을 너무도 예쁘게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자주 듣고 있다. 대합실 갤러리의 방명록에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황간역’이라고 쓴 이도 있다.

 

앞으로는 역 승강장도 문화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시가 있는 장독대를 몇 군데 만들고, 가능하다면 조각품 조형물도 설치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황간역 플랫폼은 말 그대로 문화가 있는 플랫폼이 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평평한 대합실 옥상은 카페를 겸한 하늘 대합실로 만들고, 현재 비어 있는 2층 사무실과 창고는 상설 전시공간이나 문화사랑방으로 리모델링했으면 한다. 또한 황간역 구내의 넓은 공한지를 정비하면 야생화 공원이나 자연 체험 마당 등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황간역은 오감체험과 참여가 가능한 명실상부한 문화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디자인프로젝트’사업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 우연의 일치였는지 이듬해 영동군의 지원으로 황간역이 2014년도 문화디자인프로젝트사업에 선정되어 ‘황간역 문화명소화사업’을 통해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할 수 있었다. 글을 쓸 당시는 그저 희망 사항이었던 하늘대합실과 문화사랑방 등이 불과 2년만에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사진 설명 : 황간역 2층 옥상에 새로 만든 하늘대합실에서 열린 제41회 황간역 음악회 모습. 2014년도 문화디자인프로젝트사업을 통해 옥상 공간을 정비하고 계단을 설치하여 휴게시설을 겸한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였다.>                

 

 

<사진 설명 : 황간역 2층에 조성된 문화사랑방에서 열린 황간역 즐거운 철도교류회 모습. 10여년간 방치되었던 창고와 숙직실 공간을  2014년도 문화디자인프로젝트사업을 통해 전면 리모델링하여 문화와 휴게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이런 실제 장소로서의 문화공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SNS로 소통 가능한 문화 플랫폼이다. 황간역에서 이루어지는 문화 이벤트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거리와 공간의 제약이 없이 실시간으로 참여도 할 수 있는 인터넷 기반의 문화공간으로서의 플랫폼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터넷과 IT 분야에 전문 식견과 역량이 있는 이들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시골역장의 꿈, 함께 하는 사람들

 

가끔은 내게 황간역에 몇 년을 더 있게 되는지, 정년은 얼마 남았는지를 조심스럽게 묻는 이들이 있다. 그 숨은 뜻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역장이 있는 동안은 황간역의 문화사업들이 잘 되겠지만, 막상 역장이 바뀌게 되면 제대로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난 자신 있게 말한다.

“염려 하지 마세요. 이건 역장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고향과 고향역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역장으로서 제 역할은, 제가 임기를 다하고 물러나더라도 지역 주민 공동체가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지속적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드리는 것입니다.”

 

<사진 설명 : 2013년 7월, 황간마실 회원들과 함께 비를 맞아가면서 역마당에 시가 있는 항아리 화단을 만드는 모습. 황간역 문화영토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은 바로 이처럼 고향의 내일을 생각한 순수한 마음들이었다.>

 

 

<사진 설명 : 2015년 7월 6일 황간반야사 선방에서의 황간마실협동조합 창립총회 후 단체기념사진. 뒤에 걸려있는 원만상을 보며 다짐한 공(公)과 공(共)의 정신으로 고향의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헌신할 우리 지역의 소중한 인적 자산이다.> 

 

이것이 시골역장인 나의 꿈이자,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의무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황간역을 지역의 문화 플랫폼으로 변모시키는 일에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이 내게 더욱 소중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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